▷미국 전직 검사 및 법무부 관료들이 16일 성명을 내고 윌리엄 바 법무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법무부가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스캔들로 기소된 로저 스톤의 형량을 낮춰 달라고 담당 판사에게 요청한 사실이 드러나자 법조계가 분노한 것이다. 검찰은 앞서 10일 스톤에게 7∼9년을 구형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비선 참모로 대선 승리의 일등공신이었던 스톤의 감형을 압박했다. 법무장관이 대통령의 무리한 요구에 호응한 데 대해 실망한 담당 검사 4명이 사표를 던지면서 미국판 검란(檢亂)으로 번지고 있다.
▷바 장관은 13일 ABC방송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트윗 때문에 도무지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에게 트윗을 멈추라고 한 과감한 발언을 두고 바 장관마저 대통령의 개입에 불만을 나타냈다는 분석도 있었다. 하지만 이 발언은 법무부가 담당 판사에게 형량을 낮춰 달라는 서한을 보낸 뒤에 나온 것으로 드러났다. 내부 반발을 무마하고 대통령의 개입 논란을 차단하려는 면피용 발언을 한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바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서명자는 계속 늘어나 18일 현재 2000명을 넘어섰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공화당 정부 시절 법무부 재직자가 상당수 포함됐다.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라는 이유로 형사 기소에서 특별대우를 받아선 안 되며, 법무장관이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처럼 처신한 것은 법치를 훼손한 행동이라는 비판이 뜨거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권력자가 자신과 관련된 수사를 부당하게 방해할 때 벌어지는 일이어서 남의 일 같지 않다.
김영식 논설위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