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간 송사로 번진 ‘인헌고 사태’
‘인헌고 사태’를 주도한 인헌고 학생수호연합의 김화랑 대표(왼쪽 사진 왼쪽)와 대변인인 최인호 군. 대학 입학을 앞두고 모교 정문에서 만난 두 사람은 “대학에 가서도 후배들과 소통하며 정치적 편향 교육 문제를 바로잡겠다”고 했다. 나승표 인헌고 교장(오른쪽 사진)은 이 학생들의 주장에 대해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서도 “인헌고 사태가 학교 현장 교사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진영 논설위원
―졸업식에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고 들었다. 학수연의 문제 제기에 불만을 가진 학부모에게서 욕설을 들었다고….
▽최인호=결국 경찰이 와서 소동이 끝났다. 사과도 받아냈다. 졸업식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좋게 마무리하려고 갔는데 심란했다.
▽김화랑=우리가 폭로했던 문제를 해결 못 하고 후배들에게 짐을 지우고 떠나 아쉽다.
―폭로하면 달라질 거라 기대했나.
▽김=학교가 우리를 나쁜 놈 만들 줄은 몰랐다. 편향 교육 이슈 대신 시위하니 시끄럽다, 학습권 침해다, 너희가 나쁜 거다, 이렇게 프레임 전환을 해버렸다. 환멸이 느껴진다.
―대학수학능력시험 한 달 전 폭로했는데 입시엔 지장이 없었나.
▽김=수능 최저를 맞추지 못해 목표했던 대학엔 떨어졌다. 정치적 편향 교육의 증거가 되는 영상이 입수돼 지난해 10월 18일 페이스북에 업로드했는데 파장이 컸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지난해 10월 17일 열린 인헌고 마라톤대회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반일(反日) 마라톤 구호 제창을 강요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시교육청 특별장학 결과 전교생 441명 가운데 97명이 마라톤 구호 제창, 21명은 반일 선언문 띠 제작에 강제성이 있었다고 답했다)
―교사들이 편향된 교육을 한다고 생각한 건 언제부터인가.
▽김=선생님들이 낙태 무조건 허용해야 한다, 책임감 없는 남자들이 많아서 여자들이 피해 본다고 하셨다. 솔직히 우리 세대는 남자라고 특권을 누린 기억이 없다. 그런데 남자는 지배자, 가해자, 죄인 취급하는 게 불편했다.
▽최=남녀 편을 갈라 적대감을 갖기보다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성평화 동아리를 만들었다. 회원의 절반이 여학생이었다. 자율동아리로 인정받으려면 지도교사가 필요해 A 선생님께 부탁드렸다. 그런데 워마드(여성 우월주의 사이트)가 우리 동아리 좌표를 찍어 공격했고 선생님도 지도교사를 맡을 수 없다고 거절하셨다. 반(反)사회적이지 않다면 자유롭게 논쟁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인헌고는 A 교사가 지도교사 요청을 거절한 이유에 대해 이 동아리가 ‘남성성은 모험심으로, 여성성은 공감과 모성애로 정의하며 남녀 차별을 정당화’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시교육청은 교사들의 부적절한 발언은 있었지만 의도적이거나 반복적이지 않아 정치 편향 교육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최=한두 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하신 선생님이 10분 정도 된다. 어떤 선생님은 ‘민주주의가 뭐라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한 학생이 ‘노력한 만큼 얻어가는 사회’라 답했더니 “그런 쓰레기 같은 생각은 버려라”고 하셨다. 김정은 환영 단체 관계자가 와서 강의하는데 북한이 좋은 나라라고 미화한 적도 있다.
▽최=마라톤 대회에서 문제가 된 ‘아베 망해라’ 구호도 그렇다. 일본이 역사적으로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세계화 시대인데 감정만으로 풀어가기보다 외교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
▽김=어떤 선생님은 ‘집에 20억 원이 없으면 다 약자’라고 하셨다. 학생들을 약자로 포섭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거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은 지난해 11월 18일 ‘인헌고 논란을 통해 본 학교 민주시민교육’ 토론회에서 “혁신고교인 인헌고 학생이 문제를 제기한 건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한 것, 혁신교육의 성공 사례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했다.
▽김=혁신교육 커리큘럼이 페미니즘, 성소수자, 반(反)원자력, 태양광 이런 걸로 짜여진 것 같다. 토론 위주의 수업을 하긴 하는데 기초학력 미달자가 많다 보니 토론 주제도 두발 자유 같은 단순한 것만 한다.
▽최=선생님들이 토론하게 한 뒤 자기가 지지하는 쪽 주장에 끼어들어 상대편을 어떻게 하려 들고, ‘얘들아 이게 맞는 거야’ 하고 끝내신다.
―고교 모의 선거교육, 민주시민교육이 논란이다.
▽최=선생님들이 여기 뽑아라, 이쪽은 잘하고 저쪽은 못하고 있다, 이런 말씀 하시면 대부분 학생들은 별로 관심도 없고 모르는 상태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김=어른들은 무서운 존재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어른들 의도대로 놀아나게 될 거다.
―이상적인 교육이란 어떤 걸까.
▽김=정치적 구호 강요나 사상 주입은 학생 권리 침해다. 양쪽으로 갈라 한쪽은 좋은 점만, 다른 쪽에 대해선 나쁜 점만 가르치는 건 옳지 않다. 이쪽저쪽 모두 다양한 면을 알려주면 된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최=다른 생각을 한다는 이유로 낙인찍고 차별하면 안 된다. 대학 가도 학수연 활동 계속 한다. 학교에서 사상 주입 교육한 것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 약속할 때까지. 그리고 성평화가 오는 그날까지.
나 교장은 “학생들 주장에 왜곡된 부분이 많다”고 했다.
―자체 진상 조사는 했나.
“교사 52명 상대로 학교에서 자체 조사했고, 3년간 부적절한 발언이 23건 있었던 것으로 나왔다. 교사들의 정치 성향이 은연중에 튀어나온 것이지 의도적으로 말한 게 아니다.”
―학생들의 문제 제기를 학교 안에서 해결할 수는 없었나. 사회 문제가 돼버렸다.
“(보수) 시민단체가 와서 시위해 수업을 할 수가 없다. 단체 회원들이 등굣길 하굣길 학생들에게 마구잡이로 욕한다. 아이들(김화랑, 최인호 군)이 사실을 왜곡시켜 많은 교사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변호사 비용도 걱정이다. 졸업 후엔 교사들이 어떤 법적 조치를 취할지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 모의 선거교육을 하면 교실이 정치판이 되지 않을까.
“이미 학교회장 선거 하고 있는데 특별히 모의 선거교육이 필요할까.”
―왜 인헌고 사태가 터졌다고 보나.
“우리 땐 정의가 분명했다. 민주 대 반(反)민주, 독재 대 반독재. 그런데 지금 학생들은 각기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우린 신문이나 TV 뉴스를 봤지만 학생들이 뉴스를 접하는 채널은 유튜브 등 다양하다. 그리고 학교 밖 양극화된 진영논리가 학교 현장에도 이미 들어왔다. 조그만 해프닝이 큰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정말 중립적 입장에서 가르치지 않으면 이런 일은 계속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헌고 사태가 터지기 전 서울의 초중고교에선 몇 차례 경보음이 울렸다. 인헌고 사태 이전 3년간 시교육청에 ‘정치 편향’ 수업 민원이 13건 들어왔지만 1건을 제외하고는 감사도, 특별장학도 없이 ‘자체 종결’로 마무리됐다. 학생들에게 어떻게 선거교육, 민주시민교육을 할 것인가. 이렇게 묻기 전에 먼저 자문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학생들에게 민주시민교육을 할 자격이 있는가’라고.
:: 인헌고 사태 ::
지난해 10월 22일 인헌고 학생들이 ‘인헌고 학생수호연합’을 결성하고 서울시교육청에 ‘정치 편향 교사들을 감사해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시교육청은 11월 21일 “조국 뉴스는 가짜다” “너 일베냐”와 같은 일부 교사들의 문제 발언을 확인했다는 특별장학 결과를 발표하면서 “편향 교육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 반발을 샀다. 학생들은 인헌고와 시교육청이 중립적 교육을 받을 권리와 의사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한 상태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