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4월 15일 대성당 화재 1년째 추가 붕괴 위험… 복원 지지부진, 연금파업-양극화 사회 갈등까지 정부는 “2024년 재개관 추진”… 전문가 “40년 걸릴 수도” 회의적
13일 (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지난해 4월 15일 화재로 첨탑과 지붕이 타버려 과거의 찬란함이 사라진 모습이었다. 일반인의 접근을 막는 보호벽에는 대성당 역사와 화재 당시를 보여주는 사진이 붙어 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김윤종 파리 특파원
이 조형물은 지난해 4월 15일 화재로 사라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지붕의 유명한 나무 구조물 ‘숲(The Forest)’을 12세기 전통 방식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목수 견습생 50명이 약 400시간 동안 작업했다. 이들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맞물리게 한 후 나무못으로 고정했다. 전통 방식을 고집해 밀도가 높은 참나무를 사용하다 보니 톱날이 부러지기 일쑤였지만 성당 복원에 힘을 보태기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목수 견습생들이 소속된 직업훈련단체 드부아르 협회의 장클로드 벨랑제 사무총장은 “진짜 복원에는 견습생이 아니라 지붕 건축 전문가 200명, 목수 150명, 석조 전문가 100명 등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민 마갈리 티에보 씨는 “하루빨리 대성당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를 바란다”고 했다.
팡탱을 벗어나 파리 구도심 시테섬 동쪽에 위치한 노트르담 대성당을 찾았다. 성당 옆으로 75m 높이의 크레인과 수십 명의 인부가 보였다. 하지만 성당 건물을 둘러싸고 보호벽이 세워져 출입은커녕 가까이 다가서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수많은 길거리 악사와 연인들이 모이던 대성당 앞 광장은 여전히 폐쇄된 상태였다.
아쉽게도 대성당의 복원 속도는 상당히 느린 편이다. 화재 다음 날인 지난해 4월 16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5년 내로 복원을 완료하겠다”고 선언했다. 2024년 7월 말 개막하는 파리 올림픽의 성공적인 흥행을 위해서라도 5년 내 복원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올림픽 전 대성당 복원을 마무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정부 내에서도 내년 이후에야 본격적인 복원 작업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화재 전인 2018년 첨탑 보수공사를 위해 설치된 나무 비계(飛階·건축공사 때에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 가설물)의 붕괴 위험도 상당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총 200t 무게의 비계 4만 개를 해체하는 안정화 작업이 올해 여름 내내 진행될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비계 일부가 성당 지붕으로 떨어지면 그 힘으로 천장이 무너질 수 있다. 완전히 훼손되지 않은 석조와 목재, 성당 내 각종 예술품 잔해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복원에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파트리크 쇼베 노트르담 대성당 주임신부는 쉽지 않은 복원 과정을 의식한 듯 지난해 말 미사에서 “대성당이 너무 취약하다. 완전 복원 가능성은 50% 정도”라고 토로했다. 일부 전문가는 복원에 수십 년이 걸린다고 예측한다. 중세 건축양식 전문가 에밀리 게리 영국 켄트대 박사는 “40년이 걸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 사회 갈등 산적해 후순위 밀려
프랑스 사회의 각종 갈등이 성당 복구를 더디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8년 11월 유류세 인하 요구로 시작된 후 아직도 산발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노란 조끼’ 시위가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각종 노조가 격렬히 반발하고 있는 마크롱 정권의 연금개혁, 난민 갈등, 청년실업 문제 등으로 프랑스 국민이 대성당 복원을 시급한 과제로 여기지 않는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성당 앞에서 만난 직장인 레몽 씨(43)는 “노트르담 복원은 물론 중요하지만 복구에 엄청난 공사비가 든다. 서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에 그 돈을 쓰는 게 낫다”고 했다.
납 오염 공포가 불거진 것도 복원 속도를 늦추고 있다. 화재 당시 내부 골조에 쓰인 납 300t 이상이 녹아내렸다. 납들이 연기와 함께 입자 형태로 성당 주변 수백 m 밖까지 확산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난해 7월 성당 복원공사가 잠시 중단됐다. 성당 인근 학교와 보육원 등 25곳도 임시 폐쇄됐다.
파리시는 수차례 납 정화 작업을 진행한 후 공사를 재개했지만 인부들의 공포감이 상당하다. 환경단체 ‘로뱅 데 부아’의 자키 본맹 대변인은 “복원보다 시민 건강이 중요하다. 오염 문제를 완전히 제거한 후 복원공사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복원 방향 둘러싼 정쟁
같은 날 파리 근교 팡탱의 한 광장에 설치된 노트르담 대성당 지붕 구조물. 목수 50명이 400시간 동안 만든 이 조형물에는 원형 복원을 바라는 파리 시민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
마크롱 정권은 화재 직후 환경영향평가, 건축 및 도시계획 간소화 등을 통해 이른 시간 안에 대성당을 복원할 수 있는 특별법을 발의했다. 이를 통해 △지붕이 숲으로 된 ‘자연의 노트르담’ △고딕 양식 유리 첨탑을 만들자는 ‘크리스털 노트르담’ △하늘로 조명을 쏴 빛 기둥을 세우자는 ‘빛의 노트르담’ 등 다양한 복원 아이디어가 제시됐다. 하지만 야권이 반대하자 프랑스 의회는 대성당을 원형대로 복원하고, 각종 건축 관련 예외조항도 특별법에서 삭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원 방식 논란이 여전하다. 현대적 복원 찬성 측은 “야권이 주장하는 대로 전통 방식으로 복원하면 참나무 3000그루 이상이 필요하다. 환경오염이 심각하고 화재 위험도 여전할 것”이라며 티타늄, 탄소섬유, 철강 빔 등을 내부 구조물로 쓰자고 제시했다. 야당은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 시민들 “우선 미사만 가능해도 안심”
완벽한 복원에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시민들이 성당 내부를 관람하고, 미사를 볼 수 있을 정도의 재개관은 5년 안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복원 사업을 총괄 중인 군참모총장 출신의 장루이 조르줄랭 총책임은 언론 인터뷰에서 “미사가 가능한 재개관을 2024년까지 이뤄내겠다”고 밝혔다.
이는 화재로 상처받은 시민들의 마음을 달래주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지난해 성탄절에 1803년 이후 216년 만에 미사를 개최하지 못했다. 시민 쥘리앵 씨는 “크리스마스 때 미사가 열리지 않는 대성당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완전 복원에 관계없이 이곳에서 미사만 볼 수 있어도 시민들이 크게 안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시 역시 대성당 앞 광장을 다음 달부터 개방하기로 했다. 마갈리 샤르보노 시 사무국장은 “이달 추가 납 정화 작업을 한다. 가능한 한 빨리 시민들에게 광장을 돌려주고 싶다”고 밝혔다.
여름에는 화재에서 살아남은 장미창, 생루이의 튜닉(상의) 등 150개 보물의 특별전시회도 열린다. 유명 미술사학자 베아트릭스 솔 전 베르사유궁 박물관장이 전시회 개최를 주도한다. 국립과학원(CNRS)은 과거처럼 웅장한 중세 건물 특유의 잔향이 복원되도록 대성당 내부의 음향을 분석하기로 했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