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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세이지 ‘차기작 기다리니 조금만 쉬라’며 편지 보내와”

입력 | 2020-02-20 03:00:00

봉준호 감독 일문일답




《지난해 5월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로 떠난 영화 ‘기생충’은 자신의 여정이 이렇게 길어질 것을 예상했을까. 칸을 시작으로 전 세계를 일주한 기생충은 마침내 아카데미 4개 부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19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배우와 스태프가 오스카 시상식 이후 처음으로 국내 관객 앞에 섰다. 봉 감독은 “이곳에서 제작발표회를 한 지 거의 1년이 돼간다. 참 기분이 묘하다”는 말로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다음은 봉 감독과의 일문일답.》

칸에서 시작해 오스카에서 끝난 영화 ‘기생충’의 마지막 여정인 19일 국내 기자회견에서 봉준호 감독이 500여 명의 취재진에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봉 감독은 “영화사적 사건이지만 기생충이 하나의 영화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오스카 캠페인’은 한국 영화가 처음 경험한 길이다.

“북미 배급사 네온은 중소 배급사로 생긴 지 얼마 안 된 곳이다. 게릴라전이라고 할까, 거대 스튜디오들이나 넷플릭스에 비하면 훨씬 못 미치는 예산이었지만 대신 저희는 열정으로 메웠다. 물량의 열세를 아이디어로 똘똘 뭉친 팀워크로 커버했다.”

―‘오스카는 지역(local) 축제’라는 발언이 화제가 됐다. 오스카를 도발한 것인가.

“제가 처음 캠페인에 참여하는 와중에 ‘도발’씩이나 하겠나(웃음). ‘칸과 베를린, 베니스는 인터내셔널(국제영화제)이고 아카데미는 미국 중심’이라고 비교하다가 나온 얘긴데 미국 젊은 분들이 트위터에 많이 올리셨나 보더라.”

―빈부격차를 다룬 영화가 처음은 아닌데 왜 폭발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나.

“‘괴물’은 괴물이 한강변을 뛰어다니고, ‘설국열차’는 미래 열차가 등장하는 공상영화다. 하지만 ‘기생충’은 동시대 이야기이고 이웃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영화이기 때문에 폭발력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수상 소감이 큰 화제를 모았다.

“오늘 아침에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님의 편지를 받았다. 몇 시간 전에 편지를 읽었는데 저로선 영광이었다. 마지막 문장에 그동안 고생했고 쉬라고 하셨다. 대신 ‘조금만 쉬어라. 나를 포함해 차기작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니 준비하라’고. 무척 기뻤다.”

―다음 주 개봉하는 ‘기생충’의 흑백판을 제작한 건 어떤 의도인가.

“고전 영화나 옛 클래식 영화에 대한 ‘로망’이 있다. 세상 모든 영화가 흑백이던 시절도 있지 않았나.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어떤 관객이 ‘흑백으로 보니까 더 화면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하시더라(웃음). 배우들의 미세한 표정, 섬세한 연기의 디테일이나 뉘앙스를 훨씬 더 많이 느낄 수 있다.”

―미국에서 ‘기생충’의 드라마 버전이 제작된다. 어떻게 진행 중인가.

“저는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구체적으로 에피소드를 연출할 감독을 찾을 예정이다. 영화 ‘빅 쇼트’와 ‘바이스’의 애덤 매케이 감독과 몇 차례 만나서 얘기도 나눴다. ‘기생충’의 주제의식을 블랙코미디와 범죄 드라마 형식으로 더 깊게 파고 들어갈 것 같다. 넷플릭스 드라마 ‘체르노빌’처럼 5, 6편으로 밀도 있게 제작하려고 한다. 틸다 스윈턴이나 마크 러펄로 같은 배우의 캐스팅 얘기가 나왔는데 공식적인 사안은 전혀 아니다.”

―한국사회 불균형에 대한 어두운 묘사에도 한국 관객들은 이 영화에 굉장한 지지를 보냈다. 그 이유가 뭐라고 보나.

“현대사회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씁쓸한 것. 그걸 1cm라도 피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처음부터 엔딩에 이르기까지 정면 돌파해야 하는, 그러기 위해 만드는 영화다’라고 생각했다. 관객들이 불편해하고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당의정을 입혀서 영화를 끌고 가고 싶진 않았다.”

―봉 감독이 지금 데뷔했다면 ‘플란다스의 개’는 나오지 못했을 거라는 말이 있다. 영화계 불균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젊은 신인(감독)들이 ‘플란다스의 개’나 ‘기생충’과 글자 하나 다르지 않은 대본을 가져왔을 때 과연 투자를 받을 수 있고 영화가 촬영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한국 영화산업은 제가 1999년 데뷔한 이후 20년간 눈부신 발전이 있었지만 동시에 또 젊은 감독들이 모험적인 시도를 하기에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경향도 있다. 홍콩 영화산업과 같은 길을 걷지 않으려면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적인 영화들을 영화산업계가 껴안아야 한다.”

―‘1인치 장벽’을 넘는 자막 작업을 어떻게 진행했나.

“‘대만 카스텔라’라고 하면 맥락 전달은 힘들지만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보자 했었다. 저는 최대한 세밀하게 짚고 그 솔루션을 달시 파켓이 찾아냈다. 그는 이미 ‘밥은 먹고 다니냐’(영화 ‘살인의 추억’ 대사)는 인류 최대의 난제를 해결한 분이라 자신감을 갖고 작업에 임하신다.”

―미국에서 화제가 됐던 배우는 누구인가.

“이정은 씨는 ‘오리지널 하우스키퍼’라며 화제였다. ‘그녀가 벨을 누르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들 했다. 톰 행크스 부부가 특히 이정은 씨를 보고 매우 반가워하면서 여러 질문을 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조여정 씨와 그가 연기한 부잣집 아내 연교 캐릭터에 대해서 하루 종일 생각했다’고 하시더라. 작품상의 일등공신은 앙상블을 보여준 배우들이다.”

―앞으로의 바람을 꼽는다면….

“영화사적 사건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지만 배우와 스태프의 장인정신으로 만든 장면 하나하나, 또 그 장면에 들어간 제 고민들 하나하나까지 많이 기억되길 바란다.”
 
이서현 baltika7@donga.com·김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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