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보건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발달하던 15세기 유럽에서, 지배계급은 이따금 찾아오는 전염병에 대한 방역을 위해 피지배층을 정치적으로 강력히 통제했다. 치명률이 85%까지 달하던 시대. 전염병 창궐기간 동안 권력으로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통제한다는 간섭주의 방역 정책은 일견 효과적일 것 같았다. 가장 강경했던 이탈리아 지역에서는 보건당국의 명령을 거부하는 자들을 교수형에 처하기도 했다. 세계사 속 질병의 영향을 연구한 역사학자 셸던 와츠의 ‘전염병과 역사’에 나오는 내용이다.
하지만 간섭주의 정책으로 전염병의 확산을 막겠다는 의도는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검역이 시행될 때 작업장에서는 노동자들이 쫓겨났고, 시장거래는 중단됐다. 전염병 희생자가 발생한 가옥은 전면 폐쇄되었다. 특히 당국이 장례식을 금지한 데 대해 시민들은 극도로 분개했다. 결국 곳곳에 암시장이 형성되었고 감염자의 가족들은 밤에 외출해 생계를 꾸렸다. 장례식 통제는 정말 완벽하게 실패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0일 방역 마스크를 쓴 채 수도 베이징의 한 주민센터를 방문해 주민들로부터 생필품 공급 및 방역 상황 등을 듣고 있다. 베이징=신화 AP 뉴시스
현재 전염병 국면을 맞아 중국은 세계 역사상 가장 거대한 검역을 실시하고 있다. 중국의 최고 권력기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에서는 “감시와 솎아내기, 강력한 경고로 예방과 통제작업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평소에 중국은 반체제 인사만 관리했으나, 현재는 모든 인민들을 감시·검열·통제하라는 확대된 지시사항이 100만의 지방공무원들에게 내려졌다. 우한 지역에 다녀온 사람들의 명단이 주민번호까지 포함되어 돌고 있으며, 이들에게는 경찰 등에서 하루에도 수십 통씩 전화가 온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우한과 그 주변지역은 이미 완전히 고립됐다. 전염병을 피해 우한에서 탈출한 사람들은 일반 호텔에서 묵지 못하고 닭장 같은 호스텔에 ‘감금’된다.
무엇보다도 중국공산당은 위신이 깎이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감염자·사망자수 등 코로나-19의 정보를 철저히 통제하고 있으며 관련 내용을 언론에서도 보도하지 않는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도 폐쇄됐다. 코로나19의 실태를 보도하려고 한 ‘시민기자’들은 연이어 의문의 실종을 당했다. 당국의 대응 실패가 언론 통제에서 기인했다고 밝힌 쉬장룬 칭화대 교수도 사라져 버렸다.
15세기 유럽이 예방의학의 무지에서 강력한 사회통제를 실시했다면, 중국은 이에 더하여 정치적인 이유까지도 안고 있다. 현재 중국이 처한 현실은 녹록치 않다.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가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며, 신장 인권 문제와 홍콩 민주화 운동은 대국의 단합을 해치는 심각한 골칫거리다. 설상가상으로 경제성장률도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1당 독재를 유지해올 수 있었던 번영의 성과까지도 흔들리는 상황에 발생한 급성전염병 위기에서, 중국공산당이 택한 것은 강력한 빅브라더식 사회 통제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발생 사실을 처음 외부에 알렸다가 괴담 유포자로 몰렸던 안과 의사 리원량 씨. 뉴시스
그러나 최대 난점은, 이러한 조치가 급박한 국면에서는 상충관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공산당이 국내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자료 공시를 늦추면,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받지 못해 더 많은 감염자수가 발생할 수 있다. 정치를 위해서 보건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특히 초기 대처가 완벽히 실패하면서 두 마리 토끼는 정반대 방향으로 뛰게 됐다. 말하자면 중국은 ‘역학과 정치학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중국 정부가 주민들의 신뢰를 전혀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초기대응에 실패해 인민들을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작년 12월에 이미 코로나19 감염자는 100명에 달했으나, 보건당국이 이를 인식하지 못하여 후베이 성 전역으로의 확산을 방치했다는 것이다. 중국민을 인터뷰한 외신들의 보도를 보면 ‘개인정보 유출로 충격과 공포를 느끼고 있다’, ‘환자들은 범죄자들이 아니다’ 등 아우성 투성이다. 이에 더하여 중국 정부는 가용자원을 통제에 집중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위생에는 정작 신경쓰지 못하는 듯하다.
이 사실을 중국인들도 잘 알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우한 탈출 주민들의 통제소로 사용되고 있는 호스텔은, 공기 전염의 예방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열악한 환경이라는 것이다. 감염을 막기 위해 통제소에 억류된 사람들이 오히려 감염을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주먹구구식 상황에서는 물리적인 예방의 효과성도 떨어질뿐더러, 주민들을 방역체계 내로 끌어들여 협력시키는데도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당국을 믿고 따르기보다는 주민들 스스로 각자도생을 도모하는 형태로서 ‘방역의 파편화’가 발생하게 된다. 공중보건은 공공재적 성격을 지니는데, 컨트롤타워가 신뢰를 잃으면 집단면역 등을 통한 예방의 효율성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방역체계의 실패로 중국 내 코로나19의 감염자수가 더 증가하면, 공산당은 더 큰 정치적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내부 위기를 완화시키려 사회적 통제를 더 강화하게 될 것인데, 이로 인하여 다시 역학적 조치들이 실패해 전염병이 심화되는 악순환이 만들어질 수 있다. 역학과 정치학의 딜레마는, 보건도 정치도 위기에 처하게 하는 ‘파멸 장치(doomsday machine)’를 작동시키는 것이다.
중국 국·내외 상황들도 전염병이 창궐하도록 부채질하고 있다. 중국 중앙정부는 비판에 대한 방패로 지방정부를 희생시키고 있다. 공산당은 방역에 실패한 지방 관리들을 해임하고 있으며, 전염병 창궐을 경고했던 의사 리원량을 체포한 우한시 당국을 공개 비판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은 중앙과 지방의 협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어 심각하게 우려된다. 특히 방역체계는 중앙-지방-민간의 긴밀한 협력이 생명인데,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희생양으로 삼게 된다면 지방은 정확한 정보 제공을 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또한 지방정부의 행동반경 약화로 연결되어 각 지역에 적합한 대책을 펴는 정책적 유연성까지 상실하게 된다. 요컨대 중앙과 지방이 라이벌 관계가 되어 방역의 주요한 한 축이 끊어진다. 결국 인민과 중앙, 중앙과 지방이 서로 불신하는 보건체제의 완전한 형해화(形骸化)가 이루어질 수 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 AP 뉴시스
세계보건기구(WHO)의 대응도 심각한 문제다. WHO는 중국의 조치들을 칭찬받을 일이라고 발표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번 주 들어 감염자와 사망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는데도 “중국의 신규 확진자는 감소하는 추세”라며 “대유행 용어 사용을 조심하라”고 밝혔다. 이러한 친중적 행보는 테드로스 사무총장의 선거운동에 중국이 금전적 후원을 했고, WHO 역시 중국의 재정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WHO 역시 신뢰하기 어렵게 됐다.
우울하게도 코로나19에 대한 국제적 공조는 기대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방역체계를 확보하고 국민들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견지에서 교육부가 주도하고 각 대학들이 결정한 개강 연기는 지혜로운 대처라고 평가할 만하다. 한편 코로나19의 전파 국면이 심각하여 이보다 더 효과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18일 대한의사협회는 중국 전역으로 입국 제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물론 정부가 고민해 보고, 해야 한다면 해야 하고, 안 해도 된다면 안 해도 좋다.
손세호 서울대 경제학부 16학번(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