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폴란드 바르샤바 공항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우리가 탔던 비행기에서 내려 유럽의 다른 최종 목적지로 가는 승객들이 터미널 한 구석에서 모여 앉았다. 기다리는 동안 여러 사람들이 한국 승객에게 “한국 사람이냐, 중국 사람이냐” 물어보기도, 피하기도 했다. 한국 사람이라고 알려주니 “다행이다. 오늘은 죽지 않겠다”는 개념 없는 멘트를 날리기도 했다. 그들이 아무렇지 않게 툭툭 인종차별을 하는 것을 보고 상당히 불편했다. 이 불미스러운 사건 때문에 그분들이 얼마나 수치스러웠는지 모르겠지만 나까지 불쾌했으면 당사자들은 더 그랬을 것이다.
요새 전 세계 사람들이 신경이 날카로운 것 같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저번 주 시청에서 동료들과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황당하게 나에게만 “마스크를 왜 안 썼냐”며 엄청 따졌다. 최근에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민감한 주제 하나가 올라왔다. 한국에 있는 몇몇 가게나 음식점은 ‘중국인 또는 외국인 손님을 당분간 받지 않겠다’는 공지를 올렸다. 물론 코로나19는 중국 우한시에서 처음 발병한 것 같지만 국내에 있는 확진자는 대부분 한국 사람이다. 모든 외국인 전면 금지를 시키는 것은 인권침해이며 ‘망치로 파리를 잡는 것’ 정도의 과잉 반응 아닐까.
서울시는 코로나19 관련 상황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외국인 대책반도 있다. 외국인 대책반의 임무는 여러 가지인데, 코로나19에 대한 정보 전달 업무도 그 안에 있다. 코로나19 예방수칙 및 자가 격리 생활수칙 자료를 다국어로 번역해서 외국인 주민에게 배포했고 주한 영국대사관도 관심을 가지며 협력했다.
필자는 한국에 사는 동안 사스, 메르스 등 여러 위기 상황을 다 겪어봤지만 이번에는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내부자’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 재난 영화를 보면 가끔 공무원이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위기가 커지곤 한다. 그렇게 나태하게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으니까 일이 만날 터진다. 하지만 실제 상황실에서 근무하는 서울시 공무원들은 열심히 여러 대책을 세우고 있으니 이번 상황을 잘 마무리하지 않을까 싶다.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지만, 그래도 다만 며칠이라도 이 대혼란에서 잠깐 빠질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여행지에 와 있더라도 마음을 100% 놓지는 못한다. 코로나19가 아니라도 가벼운 감기에 걸린 채 입국한대도 입국심사에 좀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다. 그래서 조심하고 있다. 여기 있는 동안 서양 사람의 볼에 키스하는 식의 인사나 악수는 자제하고 있다. 너무 과도하진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니 어쩔 수 없다. 이 코로나19도 결국에는 지나가겠지. 바이러스는 인종을 모른다. 감염에는 차별도 없다. 사람들끼리라도 차별 같은 건 하지 않는 것이 어떨까.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