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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 의심’ 의사 소견, 선별진료소가 묵살… 환자 2주간 헤맸다

입력 | 2020-02-21 03:00:00

[코로나19 확산 비상]
56번 확진자에게 무슨 일이




광화문광장 방역 작업 2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종로구와 보건소 관계자들이 방역 작업을 실시했다. 이날 질병관리본부는 종로구 부암동에 거주하는 70대 남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검사 결과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뉴스1

“3번이나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검사 대상이 아니라며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20일 서울 종로구 A이비인후과 김모 원장은 “보건 당국이 ‘진료 대상이 아니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의심 환자를 돌려보낸 대처가 황당하고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56번 환자(75)가 이 병원에서 6일 이후 열흘 넘게 5차례나 진료를 받았다. 김 원장은 “56번 환자가 종로보건소 등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감염 의심 검사를 계속해서 거부당했다고 했다. 그때마다 병원에 찾아와 하소연했다”고 했다.

○56번 환자 “선별진료소서 3번 퇴짜 맞아”

김 원장에 따르면 56번 환자가 처음 이 병원을 찾은 것은 6일. 기침을 하거나 가래에 피가 섞였고, 38도 이상 고열이 심했다. 김 원장은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돼 곧바로 선별진료소를 찾아가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8일 56번 환자는 상태가 더욱 나빠져선 이비인후과로 다시 왔다. 김 원장은 “환자가 선별진료소에서 ‘중국 방문 이력’과 ‘확진자 접촉 이력’ 등이 없다는 이유로 검사 대상이 아니라는 말만 들었다며 돌아왔다”고 했다.

김 원장은 그래도 다시 선별진료소로 가야 한다고 강력 권유했다. 하지만 56번 환자는 번번이 거절당했다며 11, 15일에도 이비인후과로 다시 왔다. 김 원장의 전언에 따르면 환자는 강북삼성병원과 서울대병원 진료소도 갔지만 ‘검사 키트가 없다’며 검사가 어렵다고 했다.

결국 17일에는 56번 환자가 직접 컴퓨터단층촬영(CT) 사진까지 가지고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김 원장은 “56번 환자가 판코로나 바이러스 검사와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다 받을 수 없게 되자 직접 CT 사진을 가져왔다. 그걸 보고 ‘비정형성 폐렴이 있다’는 소견을 내렸다”고 했다.

김 원장은 다시 한번 코로나19 감염이 우려된다는 진료의뢰서를 주며 선별진료소 방문을 권했다. 56번 환자는 18일 종로보건소를 찾았다. 보건소 측은 19일 최종 확진 판정을 내렸다.

○같은 조건인데 제각각인 검사


문제는 56번 환자가 7일부터 개정된 의사환자 사례 정의를 적용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처음 이비인후과를 방문한 6일에는 중국 후베이(湖北)성 여행 이력이 없어 코로나19 검사를 받지 못한 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7일 이후 보건당국은 의사 소견에 따라 코로나19가 의심되면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사례 정의를 개정했다. 56번 환자가 두 번째 선별진료소를 찾았을 때 검사를 했어야 한다.

하지만 56번 환자는 이후로도 계속해서 검사를 받지 못했다. 실제로 종로보건소는 12일 환자가 방문해 요청했는데도 검사를 하지 않았다. 종로보건소는 20일 논란이 커지자 “환자가 찾아왔을 당시 진료 대상으로 보일 만한 특별한 증상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강북삼성병원과 서울대병원은 “56번 환자가 왔다는 사실은 현재로선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다.

퇴짜를 맞은 56번 환자와 달리, 16일 확진 판정을 받은 29번 환자(82)는 15일 서울 고려대안암병원 응급실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의사의 의심 소견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두 환자는 지난달 말 종로노인종합복지관 경로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둘 다 고령자에 해외여행 전력도 없었다. 종로구는 이 복지관에 이어 20일 어르신이 많이 모이는 탑골공원도 폐쇄했다.

코로나 감염이 의심돼 선별진료소를 방문했지만 검사를 못 받은 경우는 56번 환자뿐이 아니다. 중국 광저우에 다녀온 지 2주가 안 된 B 씨(26)는 고열과 기침이 심해 17일 서울 관악구 한 선별진료소를 찾았지만 검사를 거절당했다. B 씨는 “중국을 다녀왔는지 묻기만 한 뒤 별다른 설명 없이 검사를 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구특교 kootg@donga.com·전주영·신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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