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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골프 무대는 훈수가 되레 독… 음식-잠자리 최상 컨디션 갖춰줄뿐”

입력 | 2020-02-21 03:00:00

연속 우승 노리는 박세리 대표팀 감독
선수들과 소통도 중요하지만 저마다 훈련방법-경험 다르기에
대회 중엔 경기 얘기 절대 안해
1929년 개장 도쿄 골프경기장, 그린 까다로워 쇼트게임 관건




최근 서울 강남구에서 만난 박세리 여자골프 국가대표팀 감독이 아이언을 짚은 채 활짝 웃고 있다. 4년 전 올림픽에서 박인비가 금메달을 딸 때 펑펑 눈물을 흘렸던 박 감독은 “선수들의 부담감을 지켜보는 일이 쉽지 않다. 차라리 선수로 출전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웃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최근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석권하면서 스포츠 팬들에게 강제 소환된 이름이 있다. 1998년 맨발 투혼 끝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US오픈 정상에 선 박세리 여자골프 국가대표팀 감독(43)이다. 봉 감독과 박 감독은 세계의 높은 벽을 넘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줬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근 서울 강남구 바즈인터내셔널 사무실에서 만난 박 감독은 “안 그래도 주변에서 시상식을 보며 US오픈을 떠올렸다는 이야기들을 들었다”며 웃고는 “스포츠, 케이팝처럼 영화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날이 오리라 기대했다. 대한민국에 많은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기생충의 한 시사회 뒤풀이에서 봉 감독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는 그는 “공감대가 있으면서도 각자 영화를 다르게 이해하는 게 재밌었다”는 감상도 전했다.

22년 전 전 세계에 한국 골프를 알렸던 그는 다시 새로운 도전 앞에 선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에 이어 다시 한번 도쿄에서 여자골프 대표팀을 이끌고 금메달에 도전한다.

이날 박 감독은 ‘혹시’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1시간여의 인터뷰 동안 10번 가까이 썼다. 박 감독은 “선수와의 소통도 물론 중요하지만 골프 선수들에겐 저마다의 훈련 방법과 경험이 있다. 대회가 시작하면 경기에 대해 일절 커뮤니케이션하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다. 내 말 한마디에 선수가 혹시 혼란스러워하거나 부담감을 갖진 않을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그 대신 매니저 역할을 자처했다. 박 감독은 “선수들의 루틴을 존중하면서 음식, 잠자리까지 컨디션 조절을 위한 최상의 조건을 만들겠다”고 했다. 4년 전 리우 대회 때도 박 감독은 인근 한식당에서 삼겹살, 김치찌개 식사를 공수하며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았다. 각별한 그의 배려에 ‘엄마 리더십’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5·미국)의 올림픽 출전 가능성도 박 감독에게는 신경 써야 하는 요소다. 박 감독은 “실력, 멘털 등 모든 걸 다 갖춘 우즈를 나도 올림픽에서 보고 싶다”면서도 “그를 보러 갤러리가 몰리면 혹시 골프장 상태에 영향을 주진 않을지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도쿄 올림픽에서는 남자 골프(7월 30일∼8월 2일)가 먼저 열리고, 여자 골프는 8월 5∼8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대표팀은 대회 7∼10일 전 소집할 예정이다.

지난해 7월에는 골프장 사전답사를 다녀왔다. 대회를 앞두고 골프장을 새로 조성한 리우와 달리 도쿄에서는 1929년 개장한 가스미가세키 골프장에서 경기가 열린다. 박 감독은 “관리는 워낙 잘돼 있다. 다만 그린이 까다롭다. 쇼트게임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최국 일본 선수들도 경계했다. “20대 초반 어린 선수들의 힘과 스피드가 굉장하다. 이전 일본 선수들에게선 볼 수 없던 플레이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세계랭킹 4위 하타오카 나사(21) 등이 주요 선수다.

‘박세리호’에 합류하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6월 29일까지 세계랭킹 15위이자 국내 선수 중 4위 안에 들어야 한다. 세계랭킹 1위 고진영(25), 3위 박성현(27)이 그나마 앞서 있다. 박 감독은 “누가 와도 어깨 위 짐을 나눠 지겠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지난해 스포츠 마케팅 기업인 바즈인터내셔널을 설립하며 사업가로도 변신했다. 취약계층의 유소년 선수를 지원하고 그들을 위한 대회를 여는 게 목표다. “성공한 세리키즈도 있지만 도중에 꿈을 포기한 이들도 많다. 유망주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후배들 덕분에 제가 또 다른 꿈을 꾸게 됐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