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넥슨의 큰 변화를 겪은 한해였다. 새해 벽두부터 넥슨 매각이 공식화되어 회사의 분위기는 뒤숭숭해졌고, 10조 원 이상으로 추정되던 매각이 결국 철회되면서 내부를 재정비하기 위해 수많은 프로젝트가 중단 혹은 취소되기도 했다.
여기에 신작 모바일 게임의 부진과 중국 내 던전앤파이터의 하락세 등 다양한 악재도 함께 겹쳐 넥슨의 2019년은 암울해 보였던 것이 사실. 하지만 넥슨은 이러한 예상을 뒤엎고, 2019년 매출 2.7조원을 달성하며 국내 게임사 중 최대 실적을 거두는 건재함을 보여줬다.
넥슨 CI(출처=게임동아)
넥슨은 2019년 실적은 매출 2조 6,840억, 영업이익은 1조 208억, 순이익은 1조 2,491억 원을 달성했다. 이는 2.1조 매출을 기록한 넷마블과 1.6조 원의 매출의 엔씨소프트와 비교해도 가장 높은 수치다.
이러한 넥슨의 예상외 실적 호조는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피파온라인4 등 넥슨의 IP(지적재산권) 성장세와 넷게임즈의 신작 V4의 흥행이 견인했다. 모바일과 온라인 양대 플랫폼에서 서비스 중인 메이플스토리는 이미 상반기에만 전년 매출의 17%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카트라이더 역시 전반기에 2018년 상반기 매출의 2배를 달성할 만큼 눈에 띄게 약진했다.
2019년 넥슨 실적 발표(출처=게임동아)
V4의 흥행 역시 넥슨 실적에 큰 힘을 보탰다. 지난해 11월 정식 출시된 V4는 출시 후 10일만에 매출 200억을 달성할 만큼 흥행을 기록했고, V4의 매출이 집계된 4분기 넥슨 모바일게임 분야 매출은 932억으로, 전년 대비 168% 이상 증가라는 기록을 세웠다. 비록 트라하를 비롯한 신작들이 성과는 예상외로 저조했지만, V4의 상승세에 힘입어 넥슨의 모바일 매출은 작년 동기 대비 32% 증가한 2,605억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처럼 온갖 이슈와 위기론 속에서도 국내 게임사 중 2019년 한해 가장 높은 성과를 거둔 넥슨이지만, 중국의 던파의 매출의 하락세가 여전하고, 오는 2020년 1분기 예상 실적이 약 20%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을 만큼 전망은 그리 장밋빛은 아니다.
이에 넥슨은 2020년을 적극적인 내부 개편과 자사에서 보유한 막강한 IP(지적재산권)을 내세운 신작의 발굴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다는 계획이다.
넥슨은 매각이 무산된 2019년 중반부터 재정비에 돌입했다. 2019년 정리된 넥슨의 프로젝트는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만 5종으로, 정상원 前 넥슨 부사장이 몸담고 있던 띵소프트의 페리아 연대기를 포함해 '드래곤하운드', ‘메이플스토리 오디세이’ 등 굵직한 프로젝트가 다수 포함되었다.
특히, 2011년부터 개발을 시작해 9년 동안 600억 이상의 금액이 투입된 페리아 연대기의 개발이 중단된 것은 세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지난 2013년 넥슨은 네오플을 통해 띵소프트의 지분 100%를 인수하며, 638억에 달하는 자금을 띵소프트에 투자했을 만큼 페리아 연대기에 큰 공을 들였다.
더욱이 ‘바람의나라’, ‘어둠의 전설’와 같은 넥슨의 초기 게임을 총괄했던 정상원 부사장이 직접 개발한 게임이었던 만큼, 주변 상황이 어떻던 출시는 될 것이라는 예측도 많았지만, 결국 페리아 연대기의 개발이 중단되면서 충격은 더 컸다. 600억 이상 투입한 프로젝트도 정리할 정도로 과감히 진행됐던 넥슨의 내부 개편의 규모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김대훤 넥슨 부사장(출처=게임동아)
개발 환경 변화를 위한 개발 조직 정비도 함께 진행됐다. 넥슨의 개발사업을 총괄한 정상원 부사장과 박지원 글로벌 최고 운영책임자(GCOO)가 회사를 떠났고, 신규 게임 개발 부문 총괄 부사장으로 넥슨 레드의 김대훤 대표를, 네오플 인수 과정에서 인연을 맺은 허민 대표를 외부 이사 고문으로 추대하는 등 적극적인 내부 개편을 진행했다.
이는 모바일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며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지만, 이에 걸맞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 넥슨의 체질 개선을 위한 강수로 풀이된다. 지난 2014년부터 모바일 사업의 역량 강화를 추진한 넥슨은 대규모 마케팅 비용을 투입한 대작부터 퍼즐, TCG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선보였지만, 엔씨와 넷마블 등 라이벌 회사에 비해 이렇다 할 장기 흥행작을 선보이지 못했다.
이에 넥슨은 오랜 시간 서든어택 서비스를 맡은 것은 물론, MMORPG 액스(AxE)를 통해 혁혁한 성과를 내며 넥슨의 온라인, 모바일 사업에서 두각을 드러낸 김대훤 대표를 개발 총괄로 임명하고, 네오플을 설립해 던파의 개발을 지휘한 허민 대표를 외부 이사 고문으로 영입하며, 보다 효과적으로 개발을 진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엠바크 슈튜디오(출처=게임동아)
공격적인 스튜디오 인수합병도 주목할 만하다. 던파를 개발한 네오플과 메이플스토리를 개발한 위젯, 서든어택의 게임하이 등 국내 게임사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M&A 성공 사례를 지닌 넥슨이지만, 최근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다.
일본의 모바일 게임사 글룹스 매각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 2012년 넥슨은 약 365억엔(한화 약 5,230억)의 금액으로 야심차게 글룹스를 인수했지만, 7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지속적인 손해를 봤다.
이에 결국 넥슨은 지난해 12월 24일 글룹스 주식 전량을 GR 드라이브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매각 금액은 단돈 1엔. 비록 주식 매각으로, 일정 금액을 챙기긴 했지만, 사실상 실패나 다름없는 결과인 셈이다.
이러한 글룹스의 사례에도 불구하고, 넥슨은 M&A에 여전히 적극적이다. 넥슨은 지난해 8월 스웨덴의 신생 개발사 엠바크스튜디오의 일부 지분을 인수함과 동시에 5년 이내 지분 전체를 모두 인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촉망받는 해외 개발 스튜디오를 통해 아시아권은 물론, 서구권 시장에 이르는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 12월 24일 손자회사인 넥슨 레드의 지분 전량을 인수하고, 자회사인 불리언게임즈에 대한 흡수합병을 진행하는 등 개발 자회사 지배구조 재편에도 나섰다.
이렇듯 대대적인 내부 개편과 과감한 게임 라인업 정리 등 내부 정비를 마친 넥슨은 2020년 자사의 온라인 IP를 활용한 다양한 신작과 미래 게임 시장의 핵심 콘텐츠로 떠오르고 있는 멀티 플랫폼 분야에 적극 나설 전망이다.
던파 모바일(출처=게임동아)
가장 주목받는 작품은 네오플이 개발 중인 ‘던파 모바일’이다. 중국 최대 게임사인 텐센트의 퍼블리싱을 통해 중국 서비스가 예정되어 있는 ‘던파 모바일’은 2019년 12월 30일 중국 사전 예약이 시작된 이후 하루 만에 예약자 350만명을, 나흘 만에 천 만명을 기록했고, 현재 사전예약 1,600만 명을 돌파한 상태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비스 중인 던파의 핵심 콘텐츠를 그대로 모바일로 이식한 던파 모바일은 빠르면 오는 2020년 테스트를 통해 첫 선을 보일 것으로 기대돼 중국 현지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아울러 넥슨의 첫 번째 게임이자 MMORPG 분야의 기네스 기록을 가지고 있는 ‘바람의나라’의 IP를 사용한 ‘바람의 나라: 연’도 출격을 앞두고 있다. 여기에 넥슨의 개발력을 널리 알린 마비노기의 감성과 커뮤니티, 파티 플레이 요소를 더한 모바일 게임 ‘마비노기 모바일(가칭)’도 기대작으로 손꼽힌다.
다수의 온라인 IP를 지닌 것도 넥슨의 긍정적인 요소 중 하나다. 현재 넥슨에서 서비스 중인 온라인게임 중 PC방 순위 10위권에 진입한 게임은 무려 5개에 이른다. 이들 상당수가 서비스 10년이 넘는 게임일 정도로 넥슨은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위력적인 IP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NYPC 토크콘서트 이정헌 넥슨 대표(출처=게임동아)
이러한 막강한 IP를 다수 보유한 넥슨인 만큼 보다 세련되게 모바일 트랜드에 접근하고, 그동안 누적된 넥슨 특유의 개발 노하우를 제대로 담아낸다면 넥슨 IP의 새로운 잠재력을 드러날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PC와 콘솔 게임기 그리고 모바일과 클라우드 등의 게임 플랫폼에서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멀티 크로스 플랫폼 시장의 도전도 이어진다.
실제로 넥슨은 PC와 콘솔 그리고 모바일, 클라우드 게임에 이르는 멀티 플랫폼을 지원하는 ‘카트라이더: 드리프트’를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술 지원으로 선보였다. 이 카트라이더: 드리프트는 지난 11월 15일 런던에서 열린 엑스박스(Xbox) 팬 페스티벌 ‘X019’서 호평을 받으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이처럼 매각 철회 이슈로 2019년을 시작한 넥슨은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새롭게 도약할 준비를 마쳤으며, 자사의 IP를 활용한 신작과 멀티 플랫폼과 같은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는 등 이전까지 보여주지 못한 자신들의 강점을 2020년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속담처럼 다사다난 했던 2019년을 보냈던 넥슨이 2020년 그 동안의 모습에서 탈피해 새로운 기업으로 변모할 수 있을지 앞으로의 모습이 주목된다.
동아닷컴 게임전문 조영준 기자 zoroast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