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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우리에게 필요한 건 빠리의 택시운전사

입력 | 2020-02-22 03:00:00

[그때 그 베스트셀러]1995년 종합 베스트셀러 8위(교보문고 기준)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홍세화 지음/375쪽·1만3000원·창작과 비평사




강창래 작가

홍세화가 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1995년)는 1970년대 말 한국 현대사를 불러낸다. ‘남민전’, 즉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때문이다. 저자는 그 조직의 일원이었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삐라를 뿌리려 했던 게 전부였다. 그것도 실패했지만. 동시에 무역회사 사무원이기도 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럽 지사로 발령이 났다. 그는 이 기회에 ‘다른 사회를 보고 싶다’는 바람을 이루게 된다. 유신체제와 긴급조치로 재갈 물린 사회를 뒤로하고 다른 사회를 만나러 갔던 것이다. 당시 한국 정부는 ‘정권에 반대한다는 생각’을 표현만 해도 잡아가두고 고문하기도 했다.

홍세화가 유럽으로 떠난 뒤 오래 지나지 않아 남민전 사건이 터졌다. 그 내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다. 저자도 그 조직원이었다는 것이 프랑스 교포사회에 알려지고 따돌림을 받았다. 어쩔 수 없이 프랑스에 망명 신청을 하기에 이른다. 그렇지만 프랑스 관료 입장에서 볼 때는 망명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정치적인 의견을 말했을 뿐인데 잡혀가서 고문당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니 설득력이 없었다.

무슨 일을 저질렀기에 돌아갈 수 없느냐는 질문에도 신통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추상적이지만 프랑스 실존주의자인 사르트르와 카뮈에게 영향을 받았고 지식인의 현실 참여 의지가 상황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열정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받아들여졌던 모양이다. 망명이 허락됐다. 이후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되어 생계를 꾸렸다. 그 덕분에 프랑스 사람들의 다양한 삶과 생각을 접할 수 있었다. 한 사회가 다른 사회를 만나 겪은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필자는 책보다 먼저 톨레랑스라는 용어를 접했다. 관용이라는 뜻이겠지. 한국 사회는 관용적이지 않아. 다양성에 대한 관용이 필요해. 동의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톨레랑스가 유행어가 됐는지 알고 싶었다. 번역하지 않고 굳이 톨레랑스라고 하는 이유도.

그제야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사서 봤다. 남민전 조직원이라는 전투적인 이미지와 달리 잔잔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그게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진 이유였을 것이다.

책이 자세히 설명하는 톨레랑스의 기본적인 의미는 ‘존중받고 싶다면 존중하라는 것’이다. 차이가 차별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국가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때에도 톨레랑스가 작동한다. 예를 들면 법이 제한속도를 시속 110km로 정했다고 해도 사람들은 시속 10∼20km는 넘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1995년 출간되자마자 30만 부 넘게 팔렸다. 저자가 자신의 삶은 이 책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했을 정도로 책은 유명해졌다. 2006년에 개정판이 나왔고 여전히 많이 팔리고 있다. 우리에게 톨레랑스라는 이야기는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강창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