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폐가야
내 팔이 하얀 가래떡같이 늘어나도당신에게 닿지 않는다
사랑하는 당신, 함께 나무 심어야 하는데
사랑하는 당신, 나는 몹시 춥거든
보일러가 고장 났거든
문마다 잠기고, 일어설 수도 없이
몸은 자꾸 지하로 가라앉는다
머리카락 한 올씩 차례로 불을 켜 봐요
크리스마스트리 등잔 같아
나만큼 추운 당신에게 달리는 등잔
당신 얼굴에 비친 거리에 물고기가 날아다닌다
당신 얼굴에 비친 세상이
얼마나 눈물겨운지 나는 안다
영혼은 헬라스 말(고대 그리스어)로 ‘psyche’라고 한다. 고대인들은 영혼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들은 영혼의 아름답고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로 상상력을 꼽았다. 혹자는 상상력이야말로 정신의 헛된 장난이라고 생각하지만, 시인들은 상상력을 가장 중요한 역능으로 꼽는다. 상상력은 없는 것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없는 것을 창조해서 잠시 곁에 두는 것이다. 그 일로 해서 쌀이 나오느냐, 돈이 생기느냐 묻는다면 내놓을 대답이 궁색하다. 그래서 이 시를 대답 대신 내놓는다. 쌀도 돈도 생기지 않지만 상상력이 있어서 얻을 수 있는 다른 세계가 있다. 시인은 곁에 없는 당신을 끈질기게 생각하고 있다. 상황은 퍽 위태로워 보인다. 마음은 폐가가 되었고, 일어설 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등불처럼 시인은 상상력을 붙잡고 있다. 내가 추운 만큼 그대도 어디선가 추울 것이다. 그러니 같이 버티고 있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추위의 공감대가 사라지면 시인을 겨우 지탱해주는 지지대도 사라질 것이다. 이럴 때 상상력은 슬픔에 익사하지 않을 수 있고, 절망에 잡아먹히지 않을 유일한 수단이 된다. 상상력은 공허한 장난일까. 아니, 상상력 없는 삶이 공허하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