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올인’ 실제 주인공 차민수 프로기사회 회장
나이에 비해 열 살 이상 젊어 보이는 차민수 5단은 “못해도 욕먹고 잘해도 욕먹는 게 프로기사회 회장 자리지만 후배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큰판을 한번 벌여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드라마 ‘올인’의 실제 주인공인 차민수 5단(69)은 최근 프로기사회 회장을 맡았다. 40대 미만의 젊은 기사들이 맡아오던 기사회장을 고희를 앞두고 맡게 된 이유에 대해 그는 “순전히 책임감”이라고 말했다.
“프로기사 377명 가운데 대국료 등의 수입이 0원인 기사가 47명이나 됩니다. 200만 원인 기사는 무려 60%가 넘습니다. 월수입이 아니라 연 수입입니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대우를 받고 있는 셈입니다.”
“랭킹 50위권 이내의 기사도 평균 연봉이 2000만 원에 불과해요. 아마추어가 리그(내셔널리그) 선수로 뛰면 2000만∼3000만 원은 벌어요. 이것만 해도 프로기사보단 나은 거죠. ‘입단하면 망한 것’이라는 얘기마저 나올 정도니 이대로 가다간 한국 프로바둑계의 미래는 암울합니다.”
그는 빠른 상황 진단만큼 빠른 해결책도 내놓았다. 그는 10여 년간 치러진 회장 선거에서 유일하게 결선 투표까지 가지 않고 1차 투표에서 당선됐다. 프로기사들도 대선배인 차 5단의 솔루션을 믿었던 것이다. 그는 우선 기사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전을 4, 5개 창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제가 그동안 쌓아온 인맥을 총동원해서라도 기전 창설이 필요합니다. 모든 기사가 다 참가하는 기전 이외에도 10∼20대 신예, 30∼40대 중견, 50대 이상 시니어, 여성 기전 등 세분화해서 기전을 만들겠습니다.”
그는 스포츠토토에 바둑을 포함시키는 것도 적극 검토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그는 프로기사들의 태도도 전과는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둑이 팀워크를 중시하는 축구 야구 등과는 달리 동료를 이겨야만 하기 때문에 개인적 성향이 강하다는 것.
“바둑계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분들에 대해 프로기사들이 감사 표시를 못 하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이 필요한 겁니다. 하하.”
그는 어린 시절 부유하게 자랐지만 어머니가 바둑 같은 승부에만 몰두하는 그를 거의 무일푼으로 미국에 쫓다시피 보냈다. 그 열악한 환경을 딛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연 수입 100만 달러 이상 버는 프로 포커 선수가 된 스토리가 드라마 ‘올인’으로 극화됐다.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인간끼리 두는 바둑에 흥미가 없어진 건 아닐까.
평생 큰 승부에 강했던 그가 다시 한판 승부를 벌이려고 하고 있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