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중국에 빚졌다.”
중국 현지에서 세계보건기구(WHO)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조사단을 이끌어온 브루스 아일워드 박사가 24일(현지시간) 베이징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날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와의 공동 언론 브리핑에서 중국 정부의 신속한 조치로 확진자가 줄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일워드 박사는 “매우 빠르게 (수치가) 떨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1개월 전 발원지인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 일대를 봉쇄한 덕분에 더 큰 위기를 피했기 때문”이라며 “세계가 (중국에) 빚을 졌다”고 주장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공포에 휩싸였음에도 WHO가 ‘중국 눈치 보기’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을 의식하지 않은 발언이란 평가다.
중국의 신규 확진자가 감소한 것은 사실이다. 중국 내 확진자는 이달 18일(1749명) 최고조에 오른 후 19일 394명, 23일 409명 등으로 줄고 있다. 그러나 중국 누적 환자만 7만7150명, 사망자 만 2592명(23일 기준)이다.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는 이미 37개국으로 퍼졌고,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이탈리아, 이란 등 세계 곳곳에서 확진자가 크게 늘고 있다. 세계 경제도 휘청이고 있다. 24일 미국증시는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1000달러 이상 하락해 시가총액은 2300억 달러(약 274조5000억원) 증발했다. 범유럽지수인 유로스톡스 50지수도 4.01% 급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WHO가 감싸기 차원을 넘어 ‘중국을 배우라’고 하자 신뢰 하락 차원을 넘어, 조직의 존재 자체에 의문스럽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에 본부를 둔 청원전문 웹사이트 ‘체인지닷오아르지’에는 지난달 말부터 ‘WHO사무총장 퇴진을 요구한다’는 청원이 올라 수십 만 명이 서명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혜안을 가졌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취임한 후 WHO가 속한 유엔에 대해 “하는 일도 없이 방만하다”며 6억4000만 달러(약 7500억 원)의 지원금도 삭감했기 때문이다. WHO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비꼰 우스개 소리다.
일각에서는 차기 WHO 수장은 국제 정치 무대에서 소신과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을 뽑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강대국에 경제적으로 종속된 개발도상국 인물이 국제기구 수장에 오를 경우 중립적인 판단이나 업무수행이 어렵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그는 당선인 시절부터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고, 신종 코로나 사태 확산 중에도 계속 중국을 두둔해왔다. 그는 지난달 30일 뒤늦게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도 “중국에 대한 여행과 교역 제한을 권고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