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지금 그는 메이저리그의 ‘늦깎이 신인’이다.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왼손 에이스로 성장한 뒤 지난해 말 세인트루이스와 2년 800만 달러(약 97억 원)에 계약했다. 긴 세월 사이 그의 위상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게 하나 있다. 웃는 모습이다. 어딘가 소년의 느낌이 물씬 나는, 천진난만한 웃음이다. 훈련을 할 때도, 동료들과 얘기할 때도, 취재진과 인터뷰를 할 때도 그는 바로 이 웃음을 짓는다. 어쩌면 이 웃음이 그를 모든 야구 선수들의 꿈인 메이저리그로 이끈 게 아닐까. 겸손과 타인에 대한 고마움이 자연스럽게 묻어나기 때문이다.
김광현의 이런 자세는 부모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경기 안산에서 떡집을 운영하며 김광현을 키운 아버지 김인갑 씨와 어머니 전재향 씨는 겸손이 몸에 밴 사람들이다.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는 아들을 뒀지만 이를 밖으로 내세운 적이 없다. 김광현이 등판하는 날엔 조용히 야구장을 방문했다. 티켓은 직접 구매했다. 김광현이 뜻깊은 승리를 거두거나, 팀에 좋은 일이 있을 땐 손수 만든 떡을 가지고 왔다. SK의 한 직원은 “광현이 부모님은 어쩌다 우리와 마주치면 ‘항상 고맙다’고 먼저 인사를 건네셨다”고 했다.
김광현도 베푸는 게 익숙하다. 후배나 동료들과 어디를 가면 그는 항상 먼저 지갑을 꺼낸다. 몇 해 전 스프링캠프 때는 불펜 보조 요원들과 후배 투수들을 고깃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이처럼 그가 뿌려놓은 씨앗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2016년 말 그는 SK와 4년 85억 원에 계약했다. 올해까지 계약 기간이 남아 있었기에 메이저리그에 가려면 구단의 허락이 필요했다.
힘을 실어준 것은 팬들과 동료들이었다. 그간 여러 차례나 팀을 우승으로 이끈 기여도와 그의 인성을 잘 아는 사람들이 그의 미국행을 응원했다. 최창원 SK 구단주 역시 대승적인 차원에서 김광현의 미국행을 지원했다. 미국에 가기 전 따로 식사를 하며 그의 꿈을 응원하기도 했다.
세인트루이스의 스프링캠프지인 미국 플로리다주 주피터와 SK의 캠프지인 베로비치는 차로 1시간 거리다. 최정과 한동민 등 SK 선수들은 쉬는 날 김광현을 만나러 왔다. 외국인 선수 제이미 로맥 역시 김광현을 찾아 그를 응원했다. 떠나면 남남이라지만 김광현과 SK는 여전히 끈끈하다. SK에서는 이런 말이 오간다고 한다. “딴 사람은 몰라도 김광현은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성공한 인생을 산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