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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 못해 사망’ 우려가 현실로… “환자 분류 매뉴얼 재정비를”

입력 | 2020-02-28 03:00:00

[코로나19 확산 비상]
병상 못구한 대구 환자 사망




환자 폭증→의료진·병상 부족→입원·치료 지연→상태 악화 또는 사망….

방역 전문가들이 감염병 확산 때 가장 우려하는 상황이다. 특정 지역에 여러 명의 환자가 발생해도 의료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으면 확산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환자가 폭증하면 의료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린다. 중증환자 치료가 늦어져 상태가 악화하거나 사망에 이를 수 있다.

27일 대구에서 숨진 13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바로 그런 경우다. 의료계에서 대구경북에 병상 확보가 시급하다는 경고음을 계속 울렸지만 정부 대응은 늦었다. 중증환자를 우선 치료한다는 방침도 현장에선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 고위험군 환자도 입원 못해

중앙방역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이날 숨진 A 씨(75)는 25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자가 격리됐다. 대구경북 지역 환자가 폭증한 탓에 비어 있는 병상이 없었다. 그는 20여 년 전 신장이식을 받은 70대 고령 환자다. 그런데도 입원 우선순위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대구 지역 확진자는 이날 오후 4시 기준 1132명. 절반 이상이 병상이 없어 자가 격리 중이다. A 씨처럼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숨지는 사례가 반복될 수 있는 상황이다.

보건당국은 A 씨의 증상만 보고 그를 입원치료 대상에서 제외한 것으로 조사됐다. A 씨는 확진 판정 후 발열 증상만 보였다. 증상만으로 A 씨를 경증으로 분류한 것에 대해 판단 착오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남중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아마 별도의 산소 공급이 필요 없어 경증으로 분류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70대라는 나이와 기저질환을 고려하면 병원에서 의료진이 자세히 경과를 살폈어야 했다”고 말했다.

기존 환자들의 사례도 이를 뒷받침한다. 확진자들을 치료 중인 신종감염병중앙임상위원회에 따르면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데도 폐 손상이 진행된 경우가 상당수였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확진 환자는 폐 엑스레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을 꼭 실시해 폐렴 징후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즉시 병상을 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계는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이런 상황에 대비하라고 주문했다. 환자의 중증도에 따라 의료기관을 ‘이원화’하고, 공공 의료원에 병상을 서둘러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환자 증가 속도만큼 정부가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손장욱 고려대안암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역 사회 감염 조짐이 보일 때부터 전문가들이 공공 의료기관을 통째로 비워 코로나19 환자를 전담해야 한다고 했지만 준비가 늦었다”고 지적했다.

○ 확진자 임시시설 관리도 필요


전문가들은 확진자가 집에서 아무 관리 없이 입원만 기다리지 않도록 병원에 가기 전 머무르는 일종의 중간 수용시설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 우한 교민처럼 임시시설에 모은 뒤 의료진이 경과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가 용이하고, 가족들의 추가 감염도 막을 수 있다. 코로나19는 발병 초기에 전염력이 강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집에서 대기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집에서는 환자 경과를 모니터링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중증도에 따라 적절한 치료를 받으려면 입원 기준도 세분해야 한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전체 환자의 3%가량을 고위험군으로 분류해 국가지정 음압격리병상으로 보내고 중증환자는 상급종합병원, 나머지 80% 정도의 경증환자는 전담 병원이나 임시시설에서 치료하는 등 장기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확진자들의 입원이 늦어지는 것은 병상 부족뿐 아니라 인력도 모자란 탓이다. 기존 환자를 감당하기도 버겁다 보니 새 병상 준비가 지체되는 실정이다. 환자를 이송할 구급대 인력도 모자란다. 대구시는 27일 “병상 약 400개를 확보했지만 이송 가능한 환자는 100명가량”이라고 밝혔다.

전국 각지에서 의료진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지만 기존 인력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이날 울산대병원에선 응급실 의사 한 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한마음창원병원에선 의료진 5명이 감염됐다. 대구 지역에서만 현재 의료진 약 20명이 확진 판정을 받아 현장에서 배제된 상태다. 전병율 차의과대 예방의학과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병상이 마련돼도 의료진이 없으면 의료 공백은 막을 수 없다”며 “의대나 간호대 학생까지 포함해 가능한 의료 자원을 대구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민 min@donga.com·사지원 / 창원=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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