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용산구 고 손기정 선생의 옛집. 집 주위에 각종 쓰레기가 널려 있다.
1일 오전 서울 용산구의 한 주택가에 있는 고 손기정 선생(1912∼2002) 옛집. 대문 옆엔 ‘미래도시 용산’이라 새겨진 벤치가 있다. 이 벤치엔 손 선생의 옛집을 포함해 ‘용산구 역사문화명소’를 표시한 지도도 그려져 있다. 함께 서 있는 안내판도 눈에 띈다. “일제 강점기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가 살았던 집이다”란 내용이다. 손 선생의 학창 시절과 올림픽 시상대에 선 사진도 인상적이다.
한데 이 명소엔 얼굴을 찌푸리게 만드는 냄새가 난다. 벤치, 안내판과 함께한 장식물인 것처럼 음식물 쓰레기를 비롯해 각종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 집 주위로 오랜 세월 누렇게 변색된 담배꽁초도 가득했다. 옆 전봇대에 용산구가 달아 놓은 ‘쓰레기 무단투기 금지 경고문’이 무색할 정도다. 심지어 이 상태는 사흘 전 찾아왔을 때와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2019년 대한민국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았다. 서울 용산구도 이 뜻깊은 해를 기념해 근·현대 역사문화명소 100곳을 지정했다. 모두 역사와 문화, 학술,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사건이나 인물과 관련된 장소다. 당시 구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이나 6·25전쟁 등의 스토리텔링을 더한 탐방 코스와 안내 책자를 개발한다는 포부도 내비쳤다.
하지만 손 선생의 옛집을 가봐선 ‘큰 포부’가 전혀 느껴지질 않는다. 안내판을 세운 지 1년도 안 돼 쓰레기 더미로 가득한 광경이 누구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심지어 붉은 벽돌로 지은 외벽에는 온갖 낙서들이 빼곡하다. 어린이나 외국인을 데려오기 난감한 글들이 스프레이로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인근 주민들도 이런 상황을 개탄했다. 주민 A 씨는 “구청에 신고했더니 ‘너무 예민하게 대응하지 말라’는 답변을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B 씨는 “주민들도 반성해야 한다. 당연한 듯 쓰레기를 버리는 이들이 꽤 있다”고 자책했다. C 씨는 참다못해 사비를 들여 폐쇄회로(CC)TV도 직접 설치했다고 한다. 그는 “하도 관리가 안 돼 (구청에) CCTV 설치를 여러 번 건의했다. 그때마다 예산이 없다고만 했다”며 답답해했다. 용산구도 사정은 있었을 게다. 구 관계자는 “역사문화명소로 지정하긴 했지만, 손 선생 옛집은 엄연히 사유 재산이라 벽에 칠한 낙서가 있어도 (손댈) 권한이 없다”고 했다. CCTV도 요청이 들어와 검토하고 있지만, 예산 문제로 바로 설치하긴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물론 구의 책임만 따질 건 아니다. 당초 숨겨진 지역 명소를 찾아내고 역사 문화적 의미를 담으려던 노력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쓰레기 투기는 지역 주민 역시 반성할 대목이다. 하지만 이렇게 쓰레기 더미로 지저분해질 뿐이라면, ‘손 선생 옛집’이라 표시하지 않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쓰레기만큼 가득한 실망감을 안고 가는 건, 다름 아닌 구의 홍보를 믿고 이곳을 찾는 시민들이다.
구특교 사회부 기자 koot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