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희 2020년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자
언제부터인가 무서운 속도로 쫓아오는 누군가에게서 도망하는 꿈을 자주 꾸었다. 있는 힘껏 달려야만 하는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등 뒤의 인기척을 끔찍해하며 눈을 뜨곤 했다. 꿈에서 깨면 나 자신의 무기력에, 나의 공포를 알아봐줄 귀 없는 적막에 시달렸다. 그런데 가끔은 꿈속의 내가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짜내어 소리를 지르고, 허공에 발길질을 하고, 내게 왜 그래야만 하는지를 되물으며 꿈에 맞섰다. 그렇게 버티다 잠이 깨면 온몸이 뻐근했다. 그래도 이런 변화가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은 마음 안에 자기만의 이야기를 안고 살아간다. 그 가운데 어떤 이야기는 고요히 간직되는 것만으로 충분하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는 자기만의 언어로 세상에 색을 새겨 넣는 것에서 의미를 찾기도 한다. 자기 이야기에 목소리를 주는 것과 주지 않는 것,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의 세계를 지키는 일이나 꿈속의 살인자에게 맞서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떤 이야기들은 목소리를 가져보지 못해서, 내 언어를 들어주는 귀를 만나본 적이 없어서, 혹은 자기를 드러내도 괜찮은 환경에서 숨쉬어본 일이 없어서 마음 안에 감금된 채 사라지기도 한다. 어떤 이야기들에 원더랜드는 고통스럽고 외롭다.
악당들의 공격이 무자비해지고 희망이 남지 않았을 때, 서럽게 우는 찡찡이의 구슬에서 처음으로 커다란 광선이 뿜어져 나오던 것을 기억한다. 그 빛이 커지고 커져 텔레비전 화면이 온통 하얗게 빛났다. 이 작은 화면이 불 켜져 있는 동안 이야기의 세계를 지키는 일은 내게 아직 끝나지 않는다. 꿈과 희망의 이야기나라, 원더랜드에서는 오늘도 찡찡이가 운다.
홍성희 2020년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