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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도 여전한 청와대-내각의 ‘달 타령’[청와대 풍향계/문병기]

입력 | 2020-03-03 03:00:00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대응과 관련된 여야 대표 회동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농부는 보릿고개에도 씨앗은 베고 잔다.”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추가 확진자가 하루 505명으로 처음으로 중국(433명)을 넘어선 지난달 27일. 국토교통부와 해양수산부 업무보고를 주재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같이 말했다. 코로나19 확산 속에 마스크 대란, 병상 부족 등 곳곳에서 정부 대응의 구멍이 커지며 민심이 들끓고 있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정 계획은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씨앗’은 다음 날 열린 대통령과 여야 대표 회동, 1일 3·1절 경축사에서 구체화됐다. 중국인 입국 금지 요구를 일축하고 북한에 대한 보건 협력을 제안한 게 대표적이다. 여론은 중국인 입국 금지에 기울어 있지만 중국과 공조해 독자적인 남북 협력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선 지지율 손실도 감내할 수 있다는 태도다.

하지만 굶주림을 견디며 ‘씨앗’을 아껴둔들 싹 틔울 토양이 말라붙으면 쓸모없기 마련. 국민 정서를 거스른 국정 계획은 힘을 받기 어렵다. 무엇보다 국내에 들어온 무증상 중국인 유학생이 확진자로 확인되는 등 중국인 입국 금지는 비합리적이라는 정부 주장이 불신을 키우고 있는 상황에서 3·1절 메시지로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성찰이나 사과 대신 한반도 평화 구상을 내놔야 했는지 의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청와대와 내각의 메시지와 민심의 괴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여권 안팎에선 정부 내부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며 균형을 잡아줄 ‘레드팀(Red Team)’의 실종을 원인 중 하나로 지적하고 있다. 지난달 13일 문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과의 만찬에서 ‘코로나 종식’을 언급하며 성급히 방역에서 경제로 정책 무게 중심을 옮긴 것도, 일주일 뒤 대구경북 방역망이 뚫린 상황에서 대통령 내외의 ‘짜파구리 오찬’ 장면이 전 국민에게 생생하게 전달된 것도 정부 내부에서 상황 판단의 균형추가 무너진 데 따른 것이다. 단 한 명의 ‘슈퍼 전파자’가 언제 다시 코로나 확산세에 불을 붙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코로나 종식 메시지나 대통령 내외의 파안대소 사진이 가진 위험성을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이 몰랐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내각은 균형감을 잃은 메시지로 민심을 자극했다. 지난달 17일 경제부처 업무보고에서 문 대통령이 경제활동 복귀를 당부하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금은 ‘문 샷 싱킹(Moon Shot Thinking)’이 필요한 때”라며 코로나 조기 종식론에 장단을 맞췄다. 한국인들이 세계 곳곳에서 강제 격리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 홍보전에 나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뒤늦게 “한국의 (방역) 능력을 믿는다는 게 국제사회의, 세계보건기구(WHO)의 평가”라며 자화자찬에 가세했다. 청와대 역시 문 대통령과 여야 대표 회동을 하루 앞두고 부랴부랴 중국인 입국 금지 요구를 반박하려다 기초적인 출입국 통계를 잘못 인용해 망신을 샀다. 코로나19에 대한 대응 실패에도 자성의 목소리 대신 문 대통령만 바라보는 ‘달 타령’을 반복한 셈이다.

청와대 내각의 불통은 임기 초와 비교해도 심각한 상황이다. 2018년엔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2019년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두고 내각과 청와대 또는 청와대 내부에서 찬반을 달리하며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여권 관계자는 “청와대 참모들이나 장차관들이 대통령 메시지에만 귀를 쫑긋 세운다”며 “물밑에서 이뤄지던 내부 의견 수렴도 예전 같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여야 대표 회동에서 강 장관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코로나 대응 실패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요구에 “(코로나19) 상황을 종식하고 난 뒤에 복기해 보자”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내각에 대한 쇄신 약속 없이 이미 떨어진 신뢰를 회복할 어떤 복안이 있는지 궁금하다. 코로나19 사태가 가라앉은 뒤 “다 계획이 있었다”며 다시 ‘달 타령’을 이어가지는 않길 기대해본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