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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국민 서로 격려하고 의료진 응원할때… 확진자 비난 멈춰야”[파워 인터뷰]

입력 | 2020-03-03 03:00:00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사업부장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사업부장이 지난달 18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유행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심 부장은 “국민적 불안이 큰 때일수록 확진자와 의료진에게 지지를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국가적인 감염병 사태가 발생했을 때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하지만 감염병 확진자에 대한 혐오는 오히려 ‘부메랑’이 될 수 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사업부장(44)의 말이다. 그가 이끄는 국가트라우마사업부는 재난을 겪은 사람들의 심리적 회복과 사회 적응을 돕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 차원의 트라우마 치료에 대한 중요성이 제기되면서 만들어졌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지난해 강원도 산불과 헝가리 유람선 침몰 등 큰 재난 때마다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심리치료를 지원했다. 심 부장은 지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통합심리지원단장을 맡고 있다. 치료가 끝나 퇴원한 코로나19 확진자와 그 가족에게 심리 상담을 하고 있다. 아산 진천 이천 격리시설에서 2주간을 보낸 우한 교민들에게도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31명이었던 지난달 18일과 1766명으로 급증한 같은 달 27일, 판이하게 달라진 상황 속에 심 부장을 두 차례 만났다. 장소는 서울 광진구 국립정신건강센터.》

―지난달 중순부터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 초반과 지금 사람들의 심리가 어떻게 달라졌다고 보나.

“처음에는 사람들이 코로나19 자체를 잘 몰랐다. 그렇다 보니 혹시라도 내가 감염되면 어떡하나 두려움이 컸을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19의 치명률이 높지 않다는 걸 알아도 전염됐을 때 사회적으로 이목이 집중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확진자에 대한 ‘낙인 효과’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코로나19 확진자들은 동선 공개로 인한 비난으로 힘들어한다. 초반에 확진된 환자 중에서 악성 댓글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동선 공개는 방역을 위해 필요하다면 할 수 있다. 그러나 확진자 개인으로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본인의 사생활 노출을 감수하는 것이다. 확진자의 동선을 놓고 비난하는 문화는 사라져야 한다.”

―퇴원한 코로나19 확진자들의 심리는 어떤가.

“지난달 27일 기준 퇴원한 코로나19 확진자 18명에게 연락이 갔다. 보건소를 통해 확진자 연락처를 받아야만 심리 지원이 가능한 상황이다. 대부분 확진자의 심리 상태는 괜찮지만 일부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병원에 있을 때는 차라리 치료에만 전념하면 됐지만, 퇴원한 이후에는 혹시라도 누가 자신을 알아보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한 것인데도 혹시나 본인이 또 병을 옮기지 않을까 비현실적인 걱정을 하는 경우도 있다. 손을 과하게 자주 씻거나 세탁을 자주 하기도 한다. 확진자 수가 자꾸 증가하니까 ‘나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메르스 때도 심리지원을 했다. 그때와 지금 상황은 어떻게 다른가.

“메르스 때는 사람들이 중동, 병원 그리고 낙타만 조심하면 된다는 거였다(웃음). 메르스는 병에 노출될 가능성은 낮아도 치명률이 높고, 병원 내 감염에 대한 우려로 병원을 찾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코로나19는 치명률이 낮다. 하지만 진원지가 가까운 중국이다 보니 병에 노출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 불안감이 크다.

아산 진천 이천 등 격리시설에 14일간 머문 교민들에게 심리지원을 한 것도 처음이다. 이러한 방식의 격리시설 운영은 다른 재난 때도 없었다. 교민들은 대체로 중국을 빠져나왔다는 사실에 안도했지만 뉴스에 달리는 악성 댓글을 보고 속상해하기도 했다. 교민들에게 ‘격리수칙을 잘 지켜줘야 한다. 많은 국민이 감사해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고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반응도 좋았다. 과거 감염병 격리시설은 ‘죽으러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많았다. 이번에 교민들이 격리를 무사히 마치고 나와 좋은 선례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산 진천 이천 격리시설에서 심리지원은 어떻게 했나.

“사람들을 한 장소에 모을 수가 없으니 방송을 해야 했다. 하루에 2번, 5분 정도 격리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법을 방송했다. 재난을 겪은 후 마음을 안정시키는 ‘안정화 기법’도 사용했다. 근육 이완이나 명상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다. 마사지볼, 색연필, 컬러링북 등 ‘심리안정 용품’도 나눠줬는데 컬러링북이 호응이 좋았다. 교민들이 색연필을 깎기 위해 커터칼이나 연필깎이를 넣어 달라는 물품 요청을 많이 했다고 한다.

1, 2차 입국 교민들은 주로 유학생이나 회사원이었으며, 3차 입국자는 가족 단위였고 중국인도 많았다. 이천 시설에서는 방송을 한국어와 중국어로 해야 했다. 외교부에서 통역을 해주시는 분이 상주한 덕에 방송을 할 수 있었다.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서 격리됐다고 생각하면 더 고립감도 크고 무서울 것 아니냐. 우리가 중국어로 방송을 해서 ‘도움이 많이 됐다’고 피드백이 왔다.”

―세월호 참사나 강원도 산불 같은 사회·자연 재난과 감염병 재난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보통 재난은 발생했을 당시에 가장 이슈가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슈가 사그라든다. 반면 감염병 재난은 시간이 갈수록 공포가 커진다. 그래서 국민의 심리적 피로도가 더 큰 듯하다. 가장 큰 차이점은 감염병 재난의 경우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지지보다는 비난 여론이 더 크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 때는 다들 피해자들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진자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는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렇지만 감염병 확진자도 피해자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특정 집단이나 중국을 비난하는 사람도 많다.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희생양’을 찾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불안은 생존에 위협을 느낄 때 나타나는 본능적인 감정이다. 불안해지면 이성적 판단이 어렵다. 불안할수록 희생양을 찾아 비난하면서 선을 긋고, ‘나는 안전하다’고 느끼고 싶은 거다. 지금 특정 집단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평상시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확진자를 비난하는 것은 건강한 행동도 아니고 본인에게 도움도 되지 않는다. 혐오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해외에서 한국인에 대한 혐오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확진자와 의료진에 대한 지지가 필요하다. 내가 감염병에 걸리더라도 타인의 응원을 받을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야 오히려 불안감이 줄어든다.”

―좋은 말이지만 현 상황에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게 쉽지 않다.

“지금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따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쉽지 않더라도 평소처럼 자신에게 긍정적인 생각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내에서라도 취미생활을 하고, 지인들과 대화할 때도 코로나19 말고 평상시에 나누던 대화 주제를 꺼내보면 어떨까. 영상을 보더라도 재밌는 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가짜뉴스나 과다한 정보는 의식적으로 보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무리 현 상황이 압도적이라도 내가 어떤 행동을 선택해서 할 수 있다는 점에 집중해야 한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인식도 중요하다. 재택근무, 모임 취소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면서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 멀리 떨어져 지내는 가족과 평소 하지 않던 화상통화를 해볼 수도 있다. 또 자기 안에 있는 이타성을 발휘할 기회가 되기도 한다. 재난 상황에서는 평소보다 더 큰 집단 효능감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대구시의사회에서 ‘의사가 부족하니 와 달라’고 호소했을 때 많은 의료진이 가는 모습을 보고 힘이 나는 것처럼 말이다. 전염병의 특성상 개인이 고립되기 쉽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신적 연결감을 갖고 서로를 도와야 한다. 외출을 줄이고 외출할 때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 사회적 규범을 잘 지키는 것도 서로를 돕는 일이다.”

―감염병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언젠가 이 상황이 끝날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 것이다. 유행이 지속되는 기간은 다를지라도 감염병은 확진자 수가 정점을 찍은 뒤 확진세가 둔화되고 종식되어왔다. 이러한 상황을 인생에서 여러 번 겪을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 신종 감염병은 계속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심리적 회복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비슷한 상황이 올 것에 대비해 ‘재난 대비 마음건강 지침’을 평소에 익혀두는 것도 중요하다. △스트레스 해소 방법 익혀두기 △타인과 마음을 열고 공감하는 대화하기 △도움을 주고받는 건강한 사회적 관계 만들기 등이다. 평소에 화재 훈련, 민방위 훈련을 하듯이 재난에 대비한 마음건강 훈련을 해둬야 다음 재난을 더 쉽게 이겨낼 수 있다.”

○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사업부장

△1976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 의학박사
△2007년 국립서울병원(현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부임
△2014년 경기 안산시 통합재난심리지원단 유가족지원팀장
△2015년 메르스 심리지원단장
△2016∼2017년 가습기살균제피해자 정신건강 지원단장
△2019년 강원산불 통합심리지원단장
△2019년 헝가리유람선 침몰사고 통합심리지원단장
△2020년 코로나19 통합심리지원단장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