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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어린이과학동아 별별과학백과]그 많던 호랑이는 어디에… 인간의 탐욕이 멸종위기로 몰아갔어요

입력 | 2020-03-04 03:00:00

15∼17세기 매년 1000마리 사냥… 아시아에선 보양식으로 희생당해
똥 샘플만 있으면 ‘호구조사’ 가능… 인도에서는 3000마리 서식 추정




인도는 ‘호랑이 살리기’를 위한 추적 조사를 하고 있다. 인도야생동물연구소 관계자가 야생 호랑이 상태를 점검하는 모습(왼쪽 사진). 러시아에서는 호랑이 사진을 촬영해 개체 수를 조사하기도 한다(오른쪽 위 사진). 한국에서는 구한말까지도 호랑이 사냥꾼이 활동했다(오른쪽 아래 사진). 사진 출처 인도야생동물연구소, 러시아 아뉴이스키 국립공원 제공, 동아일보DB

과거 호랑이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아시아 지역 전체에 걸쳐 넓게 분포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인도, 러시아, 중국 등 13개 나라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죠. 조선시대 생태환경사를 연구한 김동진 박사(전 한국교원대 교수)는 “15세기 이후부터 호랑이에게 암흑기가 찾아왔다”고 말해요. 이때부터 인간이 호랑이를 집중적으로 사냥하기 시작했거든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구가 늘면 식량이 더 필요하고, 그러면 더 넓은 농경지가 필요해요. 이를 위해선 호랑이가 사는 숲을 농경지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호랑이 대 인간의 싸움은 피할 수 없었죠.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 군인들은 호랑이 사냥법을 교육 받았고, 일정한 양의 호랑이 가죽을 왕에게 바쳐야 했어요. 당시 바쳤던 호랑이 가죽의 수를 통해 추정해 보면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매년 1000마리 가까운 호랑이가 사냥 당한 것으로 보여요. 이후 호랑이의 수가 크게 줄어 18세기부터 호랑이 가죽을 바치는 것이 힘들어졌고, 결국 호랑이 가죽을 바치는 제도가 폐지되었지요. 당시엔 호랑이와 표범을 합쳐 ‘범’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정확한 호랑이 숫자를 추정할 순 없지만, 사람이 호랑이와의 서식지 경쟁에서 승리를 했다는 것은 알 수 있답니다.

안타깝게도 사람은 호랑이를 서식지에서 쫓아낸 뒤에도 호랑이 사냥을 멈추지 않았어요. 19, 20세기 인도를 식민지로 삼았던 영국은 인도에서 호랑이 사냥을 스포츠로 즐겼으며,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선 호랑이를 보양식으로 여겼거든요. 실제로 호랑이 뼈를 넣어 담근 술은 지금도 아시아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해요. 이러한 인간의 탐욕은 결국 호랑이를 멸종 위기까지 몰아갔지요.

○ 호랑이 찾아 지구 13바퀴

호랑이를 지키려면 호랑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부터 먼저 파악해야 해요. 그래서 인도 정부와 인도야생동물연구소는 어마어마한 인력을 투입해 호랑이 호구조사 프로젝트를 실시했답니다. 연인원 59만3882명이 지구 13바퀴에 달하는 52만2996km를 돌아다니면서 손수 데이터를 모았지요. 2018년 한 해 동안 조사한 결과, 인도에 살고 있는 호랑이는 2967마리라고 추정했어요. 이는 2014년에 비해 33%가 늘어난 숫자예요.

이 조사를 위해 연구자들은 인도 21개 주에 있는 숲에서 최대 열흘간 머물면서 똥이나 발자국 등 동물 흔적을 찾아 돌아다녔어요. 연구자는 발견한 흔적을 ‘M-STrlPES’라는 앱에 기록했지요. 이 앱에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정보가 함께 기록되기 때문에 어떤 동물이 어느 지역에 많이 분포하는지를 쉽게 알아낼 수 있답니다.

그 다음엔 수집한 데이터를 통해 호랑이의 분포 지역을 추정했어요. 멧돼지, 사슴, 노루, 고라니 등 호랑이가 즐겨 먹는 동물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 호랑이가 살고 있을 확률이 높죠. 호랑이 분포 예상 지역이 정해진 후엔 이곳에 ‘트랩 카메라’를 설치했어요. 트랩 카메라는 열과 움직임을 감지해 주변에 동물이 지나가면 자동으로 촬영하는 카메라예요. 이번 연구에 사용된 트랩 카메라만 무려 2만7000개랍니다. 찍은 사진은 약 3500만 장에 달하지요.

3500만 장의 사진 중에서 호랑이 사진만 골라내는 건 인공지능의 몫이에요. 호랑이의 줄무늬는 사람의 지문처럼 저마다 다른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은 줄무늬의 모양으로 서로 다른 호랑이를 구분할 수도 있답니다. 이를 바탕으로 호랑이가 몇 마리인지 알아냈지요.

○ 똥으로 호랑이를 찾아라

호랑이, 표범, 눈표범, 사자는 고양잇과 동물 중에서도 몸집이 큰 편에 속해 ‘빅 캣(big cat)’이라고도 불려요. 2013년 울산과학기술원(UNIST) 박종화 교수와 서울대 이항 교수가 속한 연구팀은 세계 최초로 호랑이의 유전자 지도를 해독하는 데 성공해 사자, 눈표범과의 차이점을 밝혀냈답니다. 2016년에는 표범의 유전자 지도까지 해독하면서 여러 빅 캣의 유전자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이는 이른바 ‘유전자 마커’를 발견해 냈지요.

유전자 마커를 이용하면 동물의 똥을 분석해 똥의 주인이 호랑이인지, 표범인지 등을 알아낼 수 있어요. 그뿐만 아니라 호랑이 중에서도 어떤 개체인지까지 구체적으로 알 수도 있답니다. 따라서 똥 샘플만 있으면 그 지역에 호랑이가 얼마나 사는지, 어떻게 이동하고 있는지, 어떤 개체들이 짝짓기를 해서 새끼를 낳았는지 등을 상세히 알 수가 있어요.

미국 조지아대 프랭클린 웨스트 교수는 조금 특이한 방법으로 호랑이를 보존하고 있어요. 그는 2015년 애틀랜타 동물원의 호랑이에서 피부 세포를 채취해 냉동보관을 했답니다. 그는 이 프로젝트에 ‘냉동 동물원’이라는 이름을 붙였지요. 보통 종 보존을 목적으로 세포를 보관할 때엔 정자와 난자를 이용하지만, 정자는 죽을 확률이 높으며 난자는 채취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요. 이에 웨스트 교수는 체세포를 신체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로 바꾼 뒤 이를 다시 정자와 난자로 바꾸는 연구를 진행 중이랍니다. 체세포는 채취가 쉽고 수명도 길어 보존에 유리하지요.

사라졌던 호랑이가 돌아온다는 것은 그 지역의 생태계가 건강을 되찾았다는 걸 의미해요. 호랑이가 먹고살기 위해선 먹이가 될 야생동물이 풍부해야 하고, 그 지역의 자연 환경이 잘 보존돼 있어야 하니까요. 또한 호랑이는 최상위 포식자로서 야생동물들을 잡아먹어 생태계의 개체 수를 적절히 유지하기도 한답니다. 호랑이가 생태계의 균형을 지키는 파수꾼인 셈이지요.

정한길 어린이과학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