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주민, 본보 보도 뒤 직접 통화… “천사의 마음에 눈물 나고 힘도 나” 서울 주민도 감동의 라면 한 박스… 강 씨 “좋은 뜻으로 냈는데 왜들…”
코로나 휴업 가게에 응원 쪽지 서울 송파구의 한 아이스크림 가게 출입문에 붙은 ‘임시 휴업 안내문’ 옆에 시민들이 “완쾌를 기원한다” “힘내라” 등 응원 메시지를 적은 쪽지를 붙여놓았다. 이 가게 주인은 지난달 2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판정을 받은 뒤 영업을 중단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살짝 낯간지러울 수도 있으련만. 3일 오후 대구 북구에 거주하는 주부 김민정 씨(64)는 스스럼없이 상대를 ‘천사’라고 불렀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강순동 씨(62)와 전화 통화가 연결되자 김 씨는 감격에 겨운 듯 목이 메었다.
실은 두 사람은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이다. 하지만 이날 아침 평소처럼 집에서 동아일보를 집어든 김 씨는 1면 기사를 보다가 한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기초생활 급여로 생계를 잇는 5급 지체장애인인 강 씨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고생하고 있는 대구 시민을 위해서 어렵사리 성금을 내놓은 사연이었다. 장장 7년 동안 아껴서 모은 암 보험을 중도 해지한 118만7360원이다.
“우리처럼 평범한, 아니 어쩌면 더 상황이 안 좋을 수도 있는 분이잖아요. 그런데 보험까지 깨가며 돈을 보내셨다니 그냥 있을 수가 없었어요. 별거 아니더라도 김치나 밑반찬이라도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김 씨의 따스한 마음은 그대로 강 씨에게 전해졌다. 김 씨가 그를 ‘투명한 날개를 단 천사’라고 부르며 고마워하자 강 씨는 흐느끼면서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김 씨는 “그냥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도 눈물이 나고 힘도 났다”며 “서로 ‘함께 코로나19를 꼭 이겨내자’는 말만 여러 번 반복했다”고 했다.
“만난 적도 없고 생김새도 모르지만 남 같지가 않았어요. 이제 전화번호도 알았으니 자주 연락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난 건지 모르겠지만 참 잘했다 싶어요. 너무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다 함께 살아야지요.”
김 씨는 이날 오후 내내 여러 밑반찬을 만들었다고 한다. 4일 택배로 강 씨에게 보낼 계획이다. 얼마나 맛있을지는 두 사람만 알 일이다.
연락을 받은 강 씨는 또 한번 뭉클한 모습을 선사했다. 강 씨는 “좋은 뜻으로 낸 건데 왜 자꾸 이러느냐. 고맙지만 돈은 안 받겠다. 성금으로 쓰든지 마음대로 해라”라고 한사코 거부했다. 하지만 조 씨가 강 씨 명의로 지정기탁을 신청해 주민센터가 맘대로 처리할 수 없었다. 한지용 주무관은 “설득 끝에 강 씨가 주민센터에 와서 받아갔다. 그때도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이날 주민센터는 전화가 잦았다. 서울에 산다며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도 “성금 낸 강 씨가 기초생활수급자라는 기사를 아침에 읽었다. 라면 한 박스를 보낼 테니 꼭 전해 달라”고 했다. 한 주무관이 “전달한 다음에 결과를 알려드리겠다”며 연락처를 요청했지만, 여성은 그저 “잘 부탁한다”며 끊었다.
박종민 blick@donga.com·구특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