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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집 비운새… 화마가 앗아간 어린이 3명

입력 | 2020-03-05 03:00:00

외할머니 집 놀러간 사촌지간, 보호자 외출한새 전기난로 넘어진듯
서울 강동서 3세 2명-6세 1명 숨져




서울 강동구의 한 주택에서 불이 나 어린이 3명이 숨졌다. 함께 있던 보호자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어난 참사다.

강동소방서 등에 따르면 4일 오후 3시경 강동구 고덕동의 한 상가주택 3층에서 화재가 발생해 박모 양(6)과 여동생(3), 이종사촌인 이모 군(3)이 목숨을 잃었다. 같은 건물 4층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는 현장에 도착해 약 5분 만에 화재를 진압했다.

소방대는 화재 현장의 거실에서 쓰러져 있던 어린이 3명을 발견했다. 전신에 2, 3도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박 양 자매는 급히 119구급차량으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이 군은 발견 당시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화재 상황을 지켜본 주민 채모 씨(56)는 “처음엔 연기가 창문 틈새로 조금씩 새어 나오는가 싶더니 갑자기 확 쏟아져 나왔다. 순식간에 불길이 크게 번졌다”고 전했다. 피해 주택의 뒤쪽에 있는 건물 주민인 박모 씨(90) 역시 “연기가 나는가 싶더니 소방차가 왔고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고 했다.

이웃 주민 등에 따르면 세 아이는 외할머니 집에 놀러왔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김모 씨(36)가 두 딸과 큰아들(7), 큰언니의 아들을 데리고 홀로 사는 어머니 집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60대인 할머니는 인근에서 복주머니 등을 만드는 봉제공장을 다니고 있어 화재 당시엔 집에 없었다.

이날 김 씨는 조만간 이사를 앞두고 이삿짐도 줄일 겸 큰언니 자녀들에게 옷을 전해주고 어머니의 식사를 차려 주러 가는 길에 아이들을 데려갔다고 한다. 함께 집에 있던 김 씨는 큰아들(7)과 잠깐 일을 보러 집 밖으로 나간 사이에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돌아왔을 땐 이미 불길이 번져 있었다.

강동성심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유족은 “김 씨가 자리를 비운 지 채 5분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잠깐 사이에 사고가 일어난 것 같다”고 전했다. 주변에 따르면 할머니와 김 씨는 소방대가 화재를 진압할 때 바깥에서 “아이들을 살려 달라”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소방당국은 집 안 거실에 있던 전기난로가 넘어지면서 불이 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난로로 짐작되는 잔해와 옷들에 불이 옮겨 붙은 정황이 발견됐다. 난로는 현관문 바로 앞쪽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에 따르면 오늘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추위를 타는 아이들을 위해 전기난로를 켰다고 한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한 유족은 “(숨진)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어린이집이 문을 닫아 등원을 못 했다. 그러다가 할머니 집에 왔다가 이런 참변이 벌어졌다”며 울음을 삼켰다. 현장에서 만난 미용실 주인 A 씨(68·여)도 “평소처럼 어린이집만 갔어도…”라며 안타까워했다. A 씨는 할머니와 30년 넘게 이웃사촌으로 가깝게 지내왔다고 했다.

경찰과 소방당국 등은 5일 합동감식을 실시하고 정확한 화재 원인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한성희 chef@donga.com·이소정·김소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