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 속 이들의 삶을 경제적이고 화끈하며 의미 있게끔 만드는 일을 한다. 이 과정은 느리고 좁은 보폭을 오가는 환경 안에서 이뤄진다. 팔목은 저리고 어깨는 안으로 말리며 허리는 굽는다. 내가 가진 선과 과감함을 싹 긁어모아 저쪽 세계에 쏟아 보지만 정작 현실의 나는 날이 서고 옹졸해져만 간다.
그때마다 나를 찾아오는 것은 단절감이다. 세상과 나 사이 벽 하나가 생겨난다. 벽을 두고 지내는 건 편안하면서도 공허하다. 공허함은 저편의 세계를 덮치고 그들의 목표의식과 동력을 고갈시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움직인다. 방 청소를 시작으로 방치해둔 관계에 용기를 내 먼저 손을 내밀어보기도 한다. 고인 마음의 물을 저쪽 세계에 대면 이야기는 더는 흐르지 않는 걸 알기 때문에 내가 먼저 움직이는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계획된 삶, 처음과 끝이 정해진 영화 속 인물들이 내게 가르쳐준 건 생의 리듬과 율동과 활력이다. 그들을 살리기 위해 나는 움직인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지어왔다. 인생의 권태롭고 무력한 순간은 보이지 않는 곳에 묻어둔다. 괴로운 시간이 걷히면 결단의 순간이 땅 위로 고개를 내민다. 이어 결단을 이루고 말겠다는 행동의 줄기가 뻗어간다. 자라나며 샛길로 새는 시행착오 곁가지를 적당히 쳐내고 나면 비로소 세상에 내보여도 괜찮은 이야기가 완성된다.
현실의 삶은 편집이 불가능하다. 같은 실수와 투정을 반복하면서도 고쳐지지 않는 것이 수두룩하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었다 사랑하는 마음이 솟았다 감정과 얼굴은 시시각각 변한다. 지우거나 건너뛰고 싶은 순간이 간절하지만 그럴 수 없어 꿋꿋이 살아낸다. 그러다 간혹 빛나는 순간이 점점이 찾아오기도 한다. 매순간을 충실히 사는 것, 인생은 그런 거고 그렇게 버텨온 사람들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집약해놓은 것이 ‘영화(映畵)로운’ 삶이다. 괴로워하고 지워버리고 싶고 혼자 아파하던 순간이 층층이 아래에 쌓여 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영화로운 삶은 먼저 우리의 삶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나는 저편의 세계를 지어가며 이 세계를 살아가야겠다는 힘을 오늘도 낸다.
이다은 2020년 신춘문예 시나리오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