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사랑하는 것/함정임 지음/248쪽·1만3500원·문학동네

사랑이 새겨지고 파기되고 지워지는지조차 모르게 선험적인 듯 자리하고 있던 아들이 아버지의 부재를 껴안게 되거나(‘용인’), ‘…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그렇다고 머물 수도 없는 날이 온다는 것’을 엄마의 부음으로 깨닫게 되고(‘스페인 여행’), 자신의 남자와의 엇갈린 사랑을 알게 되며 ‘한 사람의 생을 알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생각한다(‘영도’).
이별은 죽음이라는 형태로 다가올 때 감당하기 어렵다. 그 죽음이 기억 속에 아무런 자취 없이 열병으로만 남아있을 때는 더하다. ‘용인’에서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던 때 K는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찾는다. 17년 전 네 살배기 K는 아버지가 묻힌 묘지를 철모르고 뛰어다닌 뒤 사흘간 고열에 시달린다. 그 어렴풋한 기억의 끝자락을 쥐고 어머니에게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 K. 그는 기억의 시원을 좇아가며 ‘자신의 삶을 복원하거나 완성해가는 과정’을 겪고 아버지의 ‘죽음을 죽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작가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이별은 출구 없는 어둠의 길 같겠지만 ‘한 사람을 사랑했다’는 그 사랑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라면 이별은 마주할 만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삶과 소설이/앞서거니 뒤서거니/오롯이/한 세상이다/나는 다만, 빌려/썼을 뿐’이라는 작가의 말을 따른다면 이 책을 읽으며 생전의 한 젊은 소설가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