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위기 대응 더딘 아베 정부… 日 내부서 비판 여론 점점 높아져
정치인에 짓눌린 관료-공무원 사회… 능동적 대응 않고 윗선 눈치만 살펴
견제받지 않는 정치권력, 위험하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며칠 전에는 일본의 한 지상파 TV에서 저녁 황금 시간대에 한국의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를 자세히 소개한 적도 있다. 검사에 소요되는 시간과 경비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스튜디오의 패널들은 말없이 조용했지만 방송의 의도는 분명했다. 일본의 방역 시스템이 어째서 한국보다 낙후되어 보이는가? 그들은 ‘일본식 간접화법’으로 시청자들에게 묻고 있었다.
한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처에도 미흡한 점이 많겠지만, 일본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인의 목소리만 들릴 뿐 방역 전문 공무원을 통한 현장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들어 부쩍 일본 미디어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대한 보도도 자주 내보낸다. 일본의 방역 정책에서 방역 담당 실무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의 간접 표현이다.
‘벚꽃을 보는 모임’은 일본 총리가 매년 4월 중순, 정부의 주요 인사와 각계의 공로자들을 초청해 도쿄의 한 공원에서 개최하는 모임이다. 연례행사에 불과했던 작은 모임이 2019년 큰 스캔들이 되어 일본 정계를 강타했다. 일본 각계에 공로가 있는 이들을 초청해야 하는 자리에 총리의 선거구민이 대거 초청된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공적 모임을 사적으로 유용한 것도 문제지만, 더 기막힌 일이 그 뒤에 일어났다. 야당의 한 의원이 초청자와 비용 명세 등의 자료 제출을 요구하자 담당 공무원이 초청자 명부를 파기해 버린 것이다. 공무원의 사명을 잊고 권력에 충성하는 손타쿠의 절정을 보여준 사건이다. 선출된 권력의 힘이 과도해지면 관료 조직은 본연의 사명감과 생기를 잃게 된다. 일본 방역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하지 않는 것은 방역을 담당한 정부 조직이 권력의 명령만 기다릴 뿐 본연의 사명감을 잃었기 때문이다.
현 정권 들어 한국의 민주주의에 많은 발전이 있었다. ‘국경 없는 기자단’에서 발표한 2019년 언론자유 순위를 보면 한국은 41위로 67위인 일본보다 20계단 이상 순위가 높다. 오랜 과제였던 검찰개혁에도 진전이 있었다. 검찰에 쏠린 힘을 분산시키기 위해 공수처가 설치될 예정이고 검경 수사권이 조정됐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 정치권력이 인사권마저 완전히 장악하면 일본처럼 오히려 민주주의가 후퇴하지는 않을까 염려스럽다. 신천지에 대한 압수수색 여부에 대해 질병관리본부가 입장을 바꾸었다는 뉴스에도 불안한 마음이 든다. 질본의 입장 변경이 방역을 위한 결정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정치권력의 압박으로 인한 것이라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선출된 권력이 관료 조직을 통제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험은 선출된 권력 역시 어느 정도는 관료 조직의 견제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