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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스크 공장에서 생긴 일[오늘과 내일/하임숙]

입력 | 2020-03-09 03:00:00

기존 거래업체에 하루아침에 “물량 끊어라”
새 거래처 15일 뒤 지급, 불평 시 세무조사 위협




하임숙 산업1부장

어느 날 갑자기, 그러니까 정확히는 지난달 26일이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공무원 2명과 국세청 직원, 경찰 1명씩 총 4명이 공장으로 출근하기 시작한 것은. 전날 정부가 마스크 생산량의 절반을 우정사업본부, 농협중앙회 등 공적판매처를 통해 팔겠다고 발표하면서다. 하루에 10만여 장을 생산하는 이 공장에 온 공무원들은 절반을 새로운 거래처에 내놓으라고 했다.

이 회사 대표는 황당했지만 따랐다. 비상시국이고 행정명령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조치는 첩첩산중이었다.

이 공장이 그동안 그저 재고를 쌓기 위해 생산했을 리는 없지 않은가. 기존에 거래하던 도매업자에게 약속했던 물량을 못 준다고 연락했다. 오랜 계약관계에 있던 도매업자들은 비명을 질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들에게 계약금을 돌려주자 이번엔 공적판매처와 일일이 새 계약을 맺어야 했다. 그나마 이곳은 규모가 있는 곳이라 영업, 재무팀 직원들이 풀가동돼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새 거래처들은 물건은 미리 받고 돈은 보름 뒤 준다 했다. “이런 일이 어디 있나. 원부자재는 현금을 주고 사온다”고 항의하자 지켜보던 국세청 공무원이 “세무조사 한번 받아보겠느냐”라고 했다. 사업 해본 사람들은 안다. 세무조사를 받으면 업무가 마비되고 실수로 혹은 몰라서 진행됐던 자그마한 회계처리 부정도 부풀려져 멀쩡한 회사가 ‘조세포탈범’이 돼버린다는 걸. 그나마 도매가라서 기존 공급가격을 그대로 받을 수 있는 게 다행이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그로부터 딱 1주일 만인 이달 5일, 공적판매 물량이 80%로 높아졌다. 이번엔 계약 당사자가 조달청으로 바뀌었다. 다시 계약을 체결해야 했다. 그나마 결제대금이 3일 만에 들어온다는 게 다행이라고나 할까.

한국의 마스크 시장은 연간 500억∼600억 원 규모로 작다. 여기에 130여 개 기업이 있으니 평균 3억∼4억 원의 연매출을 올린다고 보면 된다. 그중 일부는 기계를 1, 2대 들여 놓고 직원 대여섯이 하루에 1만 장 내외 생산하는 소규모 기업이다. 영세업체들은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하다 보니 특정 소비층을 겨냥한 특수제품을 소규모로 생산해 도매가보다 비싸게 판다. 이런 영세업체에조차 공무원들이 하루아침에 들이닥쳐 ‘회사가 알아서 이런저런 공적판매처와 계약하라, 가격은 맞춰주기 힘들다’ 했을 테니 “문을 닫겠다”는 회사가 나와도 무리가 아니라 했다.

마스크 공장 대표는 “1주일 만에 온갖 행정 혼란과 생산력 저하를 경험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닐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부는 하루 1000만 장가량인 마스크 생산물량을 늘리기 위해 여러 정책을 동원하겠다고 했지만 그가 보기엔 앞으로 생산량이 줄면 줄지 늘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필터 수출국이던 중국이 수출을 막았다. 마스크 모양을 찍어내는 장비도 주로 중국에서 수입하는데 이도 막혀 있다. 국내에 장비 만드는 곳이 있지만 주문부터 제품 출고까지 3개월 걸린다.

“야근을 해서라도 물량을 늘리라는데 이미 우리는 야근을 해서 마스크를 만들고 있다. 생산을 늘리기 위한 기본 조건인 장비와 원부자재가 부족한 상황에서 뭘 더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상황이 위급해지기 시작한 지난달 초 정부는 마스크 사재기와 유통업자만 문제 삼았다. 지난달 말엔 대통령이 나서 “우리 수요를 감당하기 충분한 생산능력이 있다. 정부를 믿으라”고 공언했다. 이후로도 오락가락하다 오늘부턴 아예 ‘마스크 5부제’가 실시된다. 수급 현황과 핵심 타개책을 파악도 못한 정부가 대책을 내놓는 건 이번이 끝이 아닐 것이다. 이게 마스크 행정을 둘러싼 대한민국의 현 상황이다.
 
하임숙 산업1부장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