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동료 배려하는 직장 내 ‘거리 두기’[Monday DBR]

입력 | 2020-03-09 03:00:00


갓난아이 시절의 인간은 무한히 약한 존재다. 부모의 도움 없이는 혼자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일어서는 것은 고사하고 몸을 마음대로 뒤척일 수도 없다.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열등감이 몸에 밴다.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열등한 존재라는 무의식적인 콤플렉스는 어른이 된 후에도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조금씩 열등감을 갖고 산다. 하지만 열등감이 반드시 나쁘게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에너지로 발현될 경우 열등감은 삶의 추진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문제는 열등감이 과도한 경우다. 정도가 심한 열등감은 우월 콤플렉스로 쉽게 탈바꿈된다. 자신이 남들보다 더 특별하고 우월한 존재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뿌리에도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알프레트 아들러(1870∼1937)의 진단이다.

이렇게 되면 간단치 않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매사 타인의 업무에 간섭하고 타인을 지배하려 든다. 아들러는 “열등감이 극심해지면 과잉 보상을 추구하게 되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타인을 압도하고 말겠다는 정복욕을 품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사람이 조직의 일원이 되면 조직원들끼리의 인간관계는 꼬이게 되고 서로가 피곤해진다.

이에 대해 아들러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과제 분리다. 쉬운 말로 고치면 거리 두기다. 내 일(과제)과 남의 일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타인의 업무에 임의로 끼어들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서로를 존중하게 되고, 인간관계가 덜 피곤해진다는 게 아들러 심리학에서 말하는 과제 분리의 요체다.

남의 일에 끼어들면서 사람들은 흔히 “이게 다 너를 위해서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본심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자신의 욕망이 담겨 있다. 타인을 배려하거나 타인을 성장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관철하기 위해서 끼어드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들의 학업이나 진로, 결혼 문제에 시시콜콜 간섭하는 것도 자식의 장래가 아니라 부모 자신의 사회적 체면이나 이목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장자(莊子)도 인간관계에서 거리 두기를 강조한다. 과도하게 자신의 욕망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것이 각종 분쟁을 유발하는 근본 원인이라고 말한다. “이름이란 서로를 다투게 하는 것이다. 이름에 연연하지 마라(名者相軋也 無感其名·명자상알야 무감기명).” 장자의 통찰이다.

명성을 추구하는 과도한 인정 욕구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장자는 허심(虛心)을 강조한다. 명성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탐욕, 즉 마음속의 과도한 인정 욕구를 비우는 것이 원만한 인간관계의 지름길이라는 게 장자의 가르침이다.

과제 분리(거리 두기)라는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감정의 분출도 자제해야 한다. 기쁠 때는 웃고, 슬플 때는 우는 것이 인지상정이긴 하지만 감정의 기복이 너무 클 경우 과제를 분리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

주변의 시선보다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인간관계의 진정한 승자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 제멋대로, 자기중심적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남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지에만 집착하는 삶이야말로 나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자기중심적 삶이며, 상대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남의 일에 간섭하는 사람이야말로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퇴근 후 다들 별일 없지? 한잔하고 가는 거야.” 칼퇴를 하려고 준비 중인 팀원들을 향한 팀장의 이러한 말 한마디는 조직의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든다. 퇴근 후 특별한 일정이 없어도 그 시간은 온전히 타인의 것이다. 상사라는 이유로 그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규율하고 통제하려는 것은 자기중심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다. 상사가 “퇴근 후 한잔”을 외쳐도 칼퇴할 수 있는 조직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혹은 상사의 미움을 받기 싫어서 억지로 자리에 끌려가는 것은 조직을 위해서도, 개인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 원고는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92호에 실린 ‘동료끼리 선 지키고, 칼퇴는 두려워 말라’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