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대란으로 소비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동아일보DB
강승현 사회부 기자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소상공인 특례보증’ 담당기관인 신용보증재단에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왔다. 경기도에서 10인 미만 사업장을 운영한다는 A 씨는 “코로나19로 죽을 지경인데 심사 속도가 너무 느리다”며 재촉했다. 근래 지옥 같은 하루를 살고 있는 소상공인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재단 직원들은 퇴근도 미루고 A 씨의 서류를 챙겼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A 씨는 분명 신용등급 7등급, 10인 미만 사업장으로 지원 대상이 맞았다. 한데 올해 발생한 매출이 ‘제로’였다. 혹시나 해서 더 살펴보니 지난해 매출 역시 하나도 없었다. 확인 결과 업체는 최근 몇 년 동안 사업 자체를 벌인 적이 없었다. 대출을 받기 힘들던 A 씨가 현장실사도 없이 보증 지원을 해준다는 소식을 듣고 코로나19 피해자인 척 굴었던 것이었다.
나라 전체가 코로나19 위기에 빠져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개의치 않고 자신의 편익을 좇는 이들의 민낯이 연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25일 서울 송파구의 한 경로당에서 벌어진 일도 마찬가지다. 어르신들에게 지급하려고 둔 마스크 170여 개가 사라졌다. 붙잡힌 범인은 10대 청소년들이었다. 최근 마스크 품귀 현상으로 가격이 폭등하자, 돈 욕심에 눈이 멀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한다. 이들의 범행으로 마스크 보급이 한참 늦어지면서 해당 지역 노인들은 감염 불안에 떨어야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5일까지 마스크 매점매석 등의 행위를 하다 붙잡힌 사람은 151명에 이르렀다. 경찰이 전국에서 내사, 수사하는 관련 사건만 2970건이다. 철없는 일탈이나 소수의 이기적 행동으로 보기엔 숫자가 너무 많다.
9일 한국은 첫 번째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지 50일을 맞는다. 그간 국내에는 7000명이 넘는 확진자가 쏟아졌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도 적지 않다. 하지만 누구도 희망을 내려놓지 않았다.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으로 달려간 의료진과 공무원, 사회적 거리 두기와 자발적 자가 격리에 나선 시민들. 이들이라고 자신의 편의를 취하고 싶지 않을까. 타인에 대한 ‘배려와 희생’이 감염병을 이기는 치료제란 걸 알기에 함께 견뎌내고 있다.
위기를 악용한 도 넘는 편익 추구는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요원하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치명적 바이러스다. 부디 매일 전해지는 국민들의 선행이 이 바이러스를 하루빨리 소멸시킬 수 있길 바란다.
강승현 사회부 기자 byhu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