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의료 자원봉사 참여 이진한 기자가 본 사투현장] 위험수위 오가는 중증환자 이송… 2시간 내내 눈 못떼고 상태 체크 인력부족에 간호사 동행도 못해
다시 현장으로 8일 대구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의료진이 공기순환장치가 달린 레벨D 방호복을 입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병동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이 방호복은 최대 8시간 동안 착용할 수 있어 중증 환자의 장거리 이송 때 주로 쓰인다. 이날 기준으로 대구동산병원에는 군의관과 자원봉사자 등 의사 50여 명이 코로나19 환자 300여 명을 돌보고 있다. 대구=뉴스1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잠시 후 호흡 곤란을 호소하는 환자가 병원에 도착했다. 중증 환자를 치료할 병상은 남아 있지 않았다. 다급해진 의료진이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수소문 끝에 전북대병원에 빈 병상이 확인됐다.
온몸을 감싸는 레벨D 방호복 차림의 박경식 교수(계명대 의대)가 구급차에 올랐다. 전북대병원까지 거리는 약 180km.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출발 후 몇 분 지나지 않아 환자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산소포화도 수치가 80%대로 떨어졌다. 95%를 넘어야 정상이다. 이송 내내 위험 수위를 오르내렸다.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의 몸부림도 심해졌다. 박 교수는 산소 공급장치와 모니터 속 그래프에서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했다. 2시간 넘게 달려 가까스로 전북대병원에 도착한 뒤 ‘전원(轉院·병원을 옮기는 것) 완료’를 알렸다. 박 교수의 얼굴이 온통 땀에 젖어 있었다.
중증 환자의 장거리 이송은 찰나의 방심도 허용치 않는다. 병원 섭외부터 이송, 도착 후 인계까지 사소한 실수가 환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하지만 의료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에 의사들이 대부분 이송을 도맡고 있다. 박 교수는 “호흡 곤란 환자들은 고통 탓에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며 “이송 때 응급구조사나 간호사가 반드시 동행해야 하는데 현재는 그럴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 “어무이, 조금만 참고 기다립시데이” 환자들 마음까지 보듬어 ▼
본보 의사기자가 본 대구 현장
빈틈없이… 8일 오전 대구 중구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보호구 착의실에서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 진료를 위해 방호복과 방호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대구=뉴스1
회진 중 증상이 호전된 환자의 경우 다시 진단검사를 실시한다. 바이러스 양이 확진 기준 이하로 떨어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검체를 채취한다. 목 깊숙이 채취 도구를 넣을 때 환자가 재채기라도 하면 침방울이 튀어 자칫 의료진도 감염될 수 있다.
○ “중증 환자 일반병실 옮길 때 뭉클”
보통 방호복을 입으면 2, 3시간씩 일한다. 의료진이 가장 긴장하는 순간은 방호복을 벗을 때다. 장비에 묻은 바이러스가 눈과 호흡기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올 수 있기 때문. 장갑과 신발 끈까지 하나하나 소독한다. 이를 만진 손에도 소독제를 뿌린다. 고글과 마스크는 가장 마지막에 벗는다. 자칫 고글이나 마스크 끈을 놓치기라도 하면 감염될 수 있다. 의료봉사에 참여한 최왕용 펜타힐즈연합내과(경북 경산시) 원장은 “고글을 벗을 때는 차라리 눈을 감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다른 현장과 달리 의료진이 더욱 긴장하는 건 코로나19가 모두 처음 겪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을 뿐 아니라 증상이 없거나 가벼운 환자도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는 경우가 흔하다.
5일 오후 병원에 비상이 걸렸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20대 여성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고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소동을 벌인 것이다. 의료진이 한참을 매달린 끝에 환자는 안정을 되찾았다. 입원을 거부하는 환자도 적지 않다. “아프지도 않은데 왜 입원을 해야 하느냐”며 퇴원을 요구하는 환자도 있다. 무증상 환자들은 “증상이 없는데 왜 양성이 나오느냐”며 검사를 불신한다. 의료진은 난감할 수밖에 없다.
의료진이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것은 상태가 호전되는 환자들을 볼 때다. 김 교수는 “얼마 전 중환자실에 입원한 중년 여성 환자가 상태가 호전돼 일반 병실로 가게 됐다며 눈물을 흘리는 걸 보고 의료진 모두 뭉클해졌다”고 말했다.
○ ‘힐링닥터’ 통한 심리치료도 효과적
환자 진료를 마치고 막 나온 사공 정규 동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얼굴에 고글로 인한 자국이 현저하게 찍혀있다. 이진한 기자 likeday@donga.com
다인실 병실에 제각기 맥없이 누워 있던 환자들이 “회진 돕니데이” 소리에 일순 반색했다. 목소리만 듣고도 ‘반가운 사람’이 왔음을 알아차린 듯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사공정규 동국대 의대 교수가 병실로 들어서자 할머니 환자가 투정하듯 물었다. “코로나는 왜 치료약이 없어예?”
1일부터 이곳에서 의료봉사 중인 사공 교수는 마치 아들처럼 다정하게 대답했다. “어무이, 감기도 약 없어예. 감기 걸리면 가만히 있어도 2주 정도면 끝나는 거 아닙니꺼, 대신 치료받으면 증상 줄여주고 합병증 예방하는 거라예. 그렇게 우리 몸에 면역이 생겨야 낫는 거라예. 알았지예? 조금만 참고 잘 기다립시데이.”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도 의료진의 몫이었다. 불안한 환자들은 늘 똑같은 질문을 하고 또 했다. “언제 집에 갈 수 있느냐”고. 누구도 알 수 없는, 주사나 약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그리고 매번 반복되는 그 질문을 사공 교수는 차트에 빠짐없이 적었다. 간호사에게 확인을 시키고 환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회신을 주었다.
이런 과정이 환자들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한 환자의 말로 알 수 있었다. “가족들을 못 보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너무 힘든데…. 그런데 이 회진만 마치면 금방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네요.”
▼ 본보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5일부터 대구서 의료봉사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집중된 대구경북 지역의 의료진은 매일 사투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의료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한 명의 자원봉사자가 아쉬운 상황이다. 5일 대구에 간 본보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는 고려대의료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의료팀과 함께 현지에서 문진과 검사, 환자 이송 등에 참여하고 있다. 생활치료센터에서 경증환자 치료도 도울 계획이다. 이 기자가 전화와 문자로 전한 현장 상황을 본보 코로나19 취재기자들이 기사로 정리했다. 이 기자는 현지에서 열흘가량 활동한 뒤 14일간 자가격리에 들어갈 예정이다.
대구=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 박성민·사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