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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기에만 수천억 적자 예상… 최악 시련기 맞은 정유-석유업계

입력 | 2020-03-10 03:00:00


한국 수출의 큰 축을 담당하는 정유·석유화학 업계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시련을 맞고 있다. 미국 및 중국산 정유·석유화학 제품이 시장에 쏟아지면서 판매 가격이 낮아진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글로벌 에너지 수요마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주요 산유국이 추가 감산 합의에 실패함에 따라 유가마저 폭락세라 당장 올해 1분기(1∼3월) 수천억 원 규모의 적자 우려도 나오고 있다.

○ 코로나19에 국제유가 폭락까지

8일(현지 시간) 블룸버그,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지난주 러시아의 반발로 산유국 추가 감산 합의가 불발되자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올해 2분기(4∼6월)와 3분기(7∼9월) 브렌트유 가격 전망을 배럴당 30달러로 낮췄으며 최저 20달러까지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6일 런던 ICE선물거래소의 5월물 브렌트유는 전일보다 9.50% 내린 배럴당 45.27달러로 마감한 상태다. 골드만삭스는 “OPEC과 러시아의 석유 가격 전쟁이 시작됐다. 코로나19로 석유 수요가 크게 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벌어진 이번 상황은 (미국 셰일 산업을 겨냥했던) 2014년 가격 전쟁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국내 정유업계는 엎친 데 덮쳤다는 분위기다. 코로나19 사태에 국제유가 폭락으로 정제마진 하락 등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오르자 9일 SK이노베이션 주가는 직전 거래일 대비 8.24% 하락했고, 에쓰오일도 9.8% 하락했다.

1분기 대규모 적자도 예상되고 있다. 이날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증권은 올 1분기 SK이노베이션의 영업손실이 최대 404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증권가에선 또 다른 상장 정유업체인 에쓰오일도 올 1분기 최대 3200억 원의 영업손실을 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운송 수요가 크게 줄면서 정유사의 휘발유, 경유, 항공유 등의 글로벌 판매량도 감소한 탓이 크다”고 설명했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올 1분기 세계 석유 수요는 일평균 9600만 배럴로 전년 동기 대비 380만 배럴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도 큰 감소 폭이다.

손실을 줄이기 위해 SK이노베이션의 정유부문 자회사인 SK에너지는 이달 울산 원유 처리 공장 가동률을 기존 100%에서 최대 85%까지 낮추기로 했다. 정유 4사의 원유 처리 공장 평균 가동률은 2018년 92%에서 지난해 85.3%로 급감한 상태다.

석유화학 업계도 LG화학이 여수·대산공장의 가동률을 95%로 내려 에틸렌 생산량을 줄인 상태다. 값싼 미국산 에틸렌이 다량으로 시장에 공급되고 중국은 생산량을 늘린 가운데 코로나19 탓에 글로벌 수요는 대폭 감소하면서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이 제품을 팔수록 손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 철강·조선·해운도 첩첩산중


지난해 미중 무역갈등 등의 요인으로 업황 회복이 기대보다 더뎠던 철강과 조선, 해운 등의 업종에서도 연초부터 상상하지 못했던 악재를 맞닥뜨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철강업계는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올 1분기부터 기대했던 실적 반등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인 중국에서 철강재 재고가 3000만 t을 넘겨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판매 부문을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조선업계도 글로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글로벌 경기 침체와 물동량 하락, 선박 발주 감소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미중 무역갈등이라는 변수로 선박 발주가 기대에 못 미쳤는데 올해도 예상 못한 악재가 등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운업계 역시 올 1, 2월 중국발 화물이 절반가량 감소한 가운데 글로벌 물동량 하락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민구 warum@donga.com·김도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