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발표를 안 하려는 아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네 살 난 민주는 얼마 전부터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어느 날 돌아와서는 현관에서부터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말한다. 내일 한 사람씩 발표를 해야 하는데, 엄마가 선생님한테 말해서 자기 좀 안 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부끄러워서 도저히 못하겠다며 서럽게 울었다.
주시 불안이 있으면서 평가에 예민한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은 사람들이 쳐다보고 무언가 수행해서 평가 받아야 하는 상황에 거부감이 있다. 이럴 때 너무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부담이 심해져 부정적 경험을 하고 그 기억 때문에 극복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앞 사례와 같은 상황이라면 “그래, 알았어. 이번에는 네가 정 발표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대신에 그 수업을 편안한 마음으로 참여하고 다른 아이들 발표를 잘 듣고 오렴. 다른 아이들이 무슨 발표를 했는지 엄마도 궁금하니까 집에 와서 얘기해 줘.” 이 정도로 말해주고 그날 수업을 좀 편안하게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이 수업 시간 내내 ‘오늘 안에 나를 시킬 수도 있어. 시키면 어쩌지?’ 바들바들 떨면서, 다른 친구들이 어떻게 발표하는지를 못 보고 못 듣는 것보다 더 낫다.
아이가 집에 와서 “걔는 있잖아. 거꾸로 말해가지고 아이들이 웃었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너는?”이라고 넌지시 물어봐준다. 아이가 “나도 웃음이 나오는데, 걔가 속상할까봐 안 웃었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엄마는 다시 “웃음이 나올 때 걔를 무시하는 거야? 그냥 웃긴 거야?”라고 묻는다. 아이가 “그냥 웃긴 거지”라고 말하면 “딴 친구들도 그래. 네가 실수하거나 했을 때 웃는 건 너를 비웃는 게 아니야” 가르쳐주면 된다. 이런 것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경험해 봐야 한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을 매번 빼주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날’ ‘당장’ 꼭 해야 한다고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의 육아는 너무 비장하다. 부모가 매 순간 비장하면 아이는 편안히 배울 수가 없다. 육아는 길다. 오늘은 꼭 안 해도 된다. 오늘보단 덜 긴장하고 덜 불안한 상황에서 다른 친구들이 하는 것을 보면서 그 상황에 대해서 편안하게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 시간이 편안해야 다음 상황에서 더 잘 겪어나간다. 그 기회를 주라는 것이다.
발표를 안 해도 “그 시간 동안에 잘 참여하고 다른 아이들 발표를 잘 들어 봐” 하는 것은, 아이를 그 상황의 주인으로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을 보고 듣는 것은 아이가 그 상황에서 약간 주도적이 되는 것이다. 주도적이 될 때 그 상황이 조금은 덜 두려워진다.
물론 아이에게 방향을 제시해줘야 한다. “매번 피할 수만은 없어. 좀 준비가 안 된 채로 발표를 해야 될 때도 있고, 좀 잘 못해낼 때도 있기도 해. 우리는 그런 일을 많이 겪기 때문에 그 정도로 해내는 것도 경험할 수밖에 없어. 못해도 발표해야 될 때도 있고 그런 거야.” 이렇게 방향은 얘기해준다. 또 “굉장히 중요한 발표는 조금 연습해서 가는 것이 맞긴 해. 틀려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야”라는 말도 해준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