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서기-학생 등 등사판 경험 있는 각 지역 여러 조직이 배포-전달

1919년 3월 경남 하동의 만세시위에서 사용한 등사본 독립선언서. 독립기념관 제공
“유(惟) 아(我) 민족은 세계의 대세에 조(照)하며 정의와 인도에 기하여 민족자결의 원칙에 의하여 최대의 결심과 최후의 성의(誠意)로써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노라.”
함경북도 성진군 만세시위에서 사용된 선언서의 첫머리다. 3·1독립선언서가 여러 단락에 걸쳐 서술한 내용이 압축돼 있다. 김 연구위원에 따르면 등사판 선언서는 경남 하동에서 사용한 것을 비롯해 이처럼 종이 한 장에 들어갈 수 있게 만든 요약본이 많았다. 만세시위 현장에서 읽고 바로 시위에 들어갈 수 있게 가능한 한 간략하게 만들었던 것. 최남선이 기초한 3·1독립선언서가 한문이 많이 섞여 시위 현장에서 대중이 이해하기 어렵기도 했다. 김 연구위원은 “‘세계개조’ ‘민족자결’ ‘정의·인도’ 같은 핵심 대목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등사판에 맞췄기에 선언서 종이의 크기가 작았던 것도 요약을 한 또 다른 이유다. 독립기념관이 소장한 한 등사판 선언서(정석해 제작)는 가로 32cm, 세로 24cm 정도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