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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와 영어 사이… 케이팝, 5mm 자막의 고민

입력 | 2020-03-10 03:00:00


그룹 ‘몬스타엑스’가 지난해 12월 미국 ABC TV 토크쇼 ‘라이브! 위드 켈리 & 라이언’에 출연하며 대기실에서 배우 잭 블랙(오른쪽)과 함께한 모습.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제공

‘Who and what I need to follow/With each step then again grows the shadow’

원 한국어 가사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될지/한 발자국 떼면 한 발자국 커지는 shadow’. 위 문장은 방탄소년단의 신작 타이틀 곡 ‘ON’의 뮤직비디오에 사용한 영어 자막이다. 뮤직비디오는 공개 일주일 만에 유튜브 조회수 1억 건을 돌파했다. 방탄소년단은 신작을 내자마자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올랐다. 컴백이 연일 세계적 화제가 되고 미국 주요 TV 프로그램에도 여러 차례 출연했지만 개별 곡에 대한 인기도는 끓는점과 거리가 있다. ‘ON’이 빌보드 싱글차트는 4위로 선전했지만, 미국 내 점유율 1위 음원 플랫폼인 ‘스포티파이’에서는 20위권에 머물다 일찌감치 ‘차트 아웃’(50위권 밖으로 밀려남)했다. 전문가들은 케이팝이 근래 5mm의 언어 장벽(휴대전화로 보는 자막 크기)을 뚫고 놀라운 선전을 보였지만, 그 장벽이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 몬스타엑스의 영어 실험…절반의 성공

방탄소년단의 다음 주자로 부상 중인 그룹 ‘몬스타엑스’는 지난달 이례적 실험을 했다. 신작 정규앨범 ‘All About Luv’의 전곡을 영어 가사로 채운 것. 한국 아이돌 그룹이 영어로만 된 정규앨범을 낸 것은 2010년 JYJ 이후 처음이다.

‘Remember all the nights like this/Sleeping in the Motel 6’

타이틀 곡 ‘Middle of the Night’에는 위와 같이 미국 내 유명 숙박업 체인 이름(모텔 6)까지 등장한다. 언어뿐 아니라 정서까지 현지화한 셈. 신작은 발매 첫 주에 빌보드 앨범차트 5위까지 오르는 놀라운 성적을 냈다. 그러나 영어 가사가 만능열쇠는 아니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몬스타엑스의 음반은 빌보드 앨범차트 160위로 낙하해 뒷심이 모자란 형국이다.

아직은 대부분의 인기 케이팝 그룹이 ‘한국어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퍼포먼스와 시각적 이미지의 힘, 팬덤의 열광적 충성도와 소비 집중력이 여전히 성공의 구심력으로 유효하기 때문이다.

○ 팬덤에게는 선망, 대중에게는 여전한 벽

본토(한국)에서의 인기 여부를 해외 팬덤이 강하게 의식하는 상황에서 영어 전용은 한국 내 히트를 힘들게 하는 반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웹진 ‘아이돌로지’의 미묘 편집장은 “북미 시장 진출에서 ‘이렇게 하면 된다’는 공식은 아직 없다”고 했다. 다만 그룹별 특성에 주목했다. 그는 “방탄소년단은 콘텐츠 자체로 승부하고 슈퍼엠과 NCT는 케이팝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를 강조한다면, 몬스타엑스는 애당초 직관적 퍼포먼스, 보편적 팝송을 매력 요소로 갖고 있었기에 영어까지 얹어 한번 승부를 할 만했을 것”이라고 했다.

신작 타이틀곡 ‘ON’의 뮤직비디오에 영어 자막을 사용한 방탄소년단.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방탄소년단 역시 보편적 해외 대중을 겨냥하는 장치를 구사하고 있다. ‘Oh my my my oh my my my’(‘작은 것들을 위한 시’), ‘Hey na na na’ ‘Eh-oh’ ‘bring the pain oh yeah’(‘ON’) 같은 감탄사나 영어 가사를 주요 부분에 전진 배치한 것. 현지 라디오 방송횟수나 스포티파이 스트리밍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는 “한국어가 해외 팬덤에게는 몰입도와 선망, 내부 결속을 높이는 요소가 되지만 대중에게는 장벽이 될 수도 있음은 여전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