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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타이타닉호 구명보트와 마스크 배급

입력 | 2020-03-11 03:00:00


1912년 4월 어느 밤, 대서양을 항해하던 유람선 타이타닉호는 빙하와 충돌합니다. 배가 침몰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스미스 선장은 조난신호를 보내고 구조를 요청합니다. 구명보트는 20척에 불과했습니다. 타이타닉호 탑승 인원의 절반은 구명보트에 탈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스미스 선장은 승무원들에게 “승객과 선원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눠주고 구명보트를 내려라. 구명보트에는 여자와 어린이부터 태운다”라고 지시했습니다. 승무원들은 일사불란하게 1등실부터 3등실 순서로 여자와 어린이를 우선 보트에 태웠습니다. 결국 타이타닉호에 탄 여성의 74%, 어린이의 51%가 구조됐습니다. 남성은 20%만 생명을 건졌습니다. 승무원의 경우는 여성 87%, 남성 22%가 탈출했습니다.

2009년 ‘신종플루’라는 바이러스가 유행했을 때 백신이 개발됐습니다. 하지만 수량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접종 우선순위를 정했습니다. 의료인과 방역요원이 최우선이었습니다. 임신부와 영유아가 그 다음 순위였고 학생, 노인, 만성질환자, 군인 순으로 접종 대상이 됐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대응 단계가 ‘심각’으로 접어들며 마스크 품귀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9일부터 마스크 5부제를 시행했습니다. 또한 마스크의 수출을 제한하고 생산량의 80%를 공적 판매하도록 했습니다. 1인당 구매량은 주당 2개로 제한했습니다. 만 10세 이하의 어린이와 만 80세 이상의 노인, 장기요양수급자, 장애인은 대리 구매가 가능합니다. 극심한 초과수요 상황에서 발생하는 사재기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보입니다.

만약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돼 제한된 양만 공급된다면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좋을까요. 미래 어느 날 치사율이 매우 높은 바이러스가 출현해 백신을 선택적으로 투여해야 한다면 우선 접종 순위를 어떻게 정할까요. 사회적 자원을 합리적으로 분배하는 일은 곧 정의(正義)의 문제입니다. 정의론의 대가인 미국 철학자 존 롤스(1921∼2002·사진)에 따르면 절차가 공정해야 결과도 공정합니다.

롤스는 절차의 공정성을 위해서는 합의 당사자들이 ‘원초적 입장’에 놓여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원초적 입장’은 사회적 지위, 정신적·신체적 능력, 가치관 등이 ‘무지의 베일’에 싸여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야 자신에게 유리한 절차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죠.

롤스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3가지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평등한 자유의 원칙,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 차등의 원칙이 그것입니다. 차등의 원칙은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을 뜻합니다. 원초적 입장에서 사람들은 그들이 최소 수혜자가 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최소 수혜자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위험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위기 상황에서 구조 우선순위에 합의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타이타닉호의 대처 방식이 감동을 준 것은 사회적 약자를 우선 배려한 정신의 고귀함 때문일 겁니다. 마스크 배분을 둘러싸고 여러 논란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도 미래의 어느 순간 닥칠지 모를 더 큰 재난에 대비할 기준과 질서를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요?

박인호 한국용인외대부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