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협상 타결 뒤 혼란에 빠진 아프간… 미국의 책임과 역할 아직 남아 있어

장택동 국제부장
그렇게 시작된 전쟁은 미군의 타깃이던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고(2001년 11월), 빈라덴이 사살(2011년 5월)된 뒤에도 끝나지 않았다. 피해는 불어났다. 알자지라 방송과 미 브라운대 왓슨국제공공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사망자만 미군·연합군 4000여 명, 아프간 군경 6만4000여 명, 탈레반 및 무장세력 4만2000여 명에 달한다. 민간인 4만3000여 명도 희생됐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은 2조 달러 이상을 쏟아부었다.
18년이 넘도록 이어졌던 전쟁을 끝내는 평화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을 들으니 반가웠다. 하지만 ‘아프간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합의’라는 이름의 합의문의 내용을 살펴보니 실망만 남았다.
분쟁 전문 웹사이트 ‘롱워저널(The long war journal)’에 따르면 현재 아프간 지역 중 약 33%는 정부가, 19%는 탈레반이 통제하고 있고 나머지 48%는 양측이 경합하고 있다. 미군이 주둔 중인 상황에서도 양측의 힘겨루기가 치열한데 미군이 떠난 뒤 싸움이 끝날 리 만무하다.
2011∼2013년 아프간 주둔 미군과 연합군 사령관을 지낸 존 앨런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소장은 5일 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미군이 철수하면 아프간 정부의 권위와 힘은 확연하게 줄어들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아프간 내부의 평화협상이 잘 진행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이번 협상은 평화협상이 아니라 미국의 철군협상이었을 뿐이라는 비판이 계속 나오고 있다.
예상대로 아프간 내부는 삐걱거리고 있다.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 포로 석방을 거부했고,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를 공격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혼란을 틈타 한동안 잠잠했던 이슬람국가(IS)가 다시 아프간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아프간 정부는 오랫동안 미국의 지원을 받아왔지만 자립에 실패했고 내분까지 심각해 탈레반과 협상을 할 여력이 없다. 9일에는 지난해 9월 치러진 대선에서 2위를 기록한 압둘라 압둘라 최고행정관이 결과에 불복하면서 1위인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과 각각 대통령 취임식을 갖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이던 시대는 지났다고 하지만 아프간을 공격한 이후 벌어진 일, 특히 미군과 탈레반 간의 전쟁에서 수만 명의 아프간 시민이 목숨을 잃은 일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미국이 2001년 아프간을 공격할 당시의 작전명이기도 한 ‘항구적 자유(Enduring freedom)’가 아프간에 정착되려면 아직 미국이 필요해 보인다.
장택동 국제부장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