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무슨 큰 문제가 될까요? 대개는 그냥 일없이 지나가지만, 때로는 사소한 문제가 되고 때로는 큰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상상력 부족은 상황 판단의 오류로 이어집니다. 뜨겁게 달구어진 그릇을 맨손으로 잡으면 화상을 입고, 맨발로 길을 걷다가 못에 찔릴 수도 있습니다. 인화 물질 옆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불을 내고, 운전 중에 휴대전화를 보다가는 앞의 차를 추돌하거나 인명사고를 냅니다.
몰입하는 상상에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예측은 결정적입니다. 그런데 상상력이 빈곤하거나 결핍되어 있으면 삼척동자도 뻔히 미리 알 수 있는 일을 놓치고 더 큰 위기 상황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갑니다. 삶에 닥치기 마련인 위기는 예측해서 예방하거나 적어도 위험도를 줄이는 것이 최선입니다. 선제적(先制的) 대응은 상상으로만 가능합니다. 일단 일이 벌어지면 당황하게 되고 상상력은 더욱 위축됩니다.
세상에는 세 범주의 사람이 있습니다. 일이 벌어지기 전에 대비하는 사람, 일이 생기고 나서야 대처하는 사람, 일이 생기면 허둥거리며 어쩔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디에 속하는지 판별하는 지표는 ‘상상력 등급’입니다. 한 예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의 상상력은 부족을 넘어 결핍 등급입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으로는 자료와 통계라는 부분적 진실에 매달려 논리적 왜곡과 자기모순의 늪에 빠지는 성향입니다. 책임이 무거운 사람일수록 상상력 부족으로 위기가 깊어지면 겉모습과 달리 속으로 무너집니다. 얼굴을 들기 힘들고 자존감은 바닥을 칩니다. 어렵게 쌓아온 정체성에 금이 가는 소리도 들립니다.
이때 가장 쉽게 쓰는 방어기제가 ‘투사’입니다. 위기 발생의 탓을 남에게 돌리는 ‘묘책(妙策)’을 짜내는 것입니다. 남에게 책임을 돌리고 자신은 교묘하게 빠져 버리는 꾀를 부리는 일은 정말 흔합니다. 더욱이 이 상황에서 자화자찬(自畵自讚)과 같이 뻔히 논란을 불러올 말을 해서 사회적 파장을 증폭시킨다면 이것 역시 그 말이 불러올 후폭풍을 상상하거나 예측하는 능력이 부족한 결핍 증상입니다. 묵묵히 겸손하게 1루타만 쳐도 뒤집는데 만루 홈런 욕심에 힘을 잔뜩 주고 방망이를 휘둘러서 모처럼의 기회를 망치는 타자와 같습니다.
상상력 결핍증은 집단도 감염시킵니다.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목소리를 내는 조직문화의 구성원은 상상력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쓸데없이 상상력을 발휘하다가는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니 진부한 이야기를 중얼거리거나 심지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획기적인 말을 외치며 총대를 멥니다. 그 와중에 지금 대한민국은 상상력을 발휘했으면 이렇게까지는 안 겪었을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일들을 피 흘리며 겪고 있습니다.
질병 분류를 보면 ‘○○○ 결핍증’이라는 진단명이 있고 선천성과 후천성으로 추가 분류도 합니다. 상상력 결핍증도 선천성과 후천성으로 나눌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선천성의 원인은 무엇이고, 후천성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개인 발병 그리고 집단 발병의 병리학적 원인과 과정은 각각 무엇일까요? 약속을 취소하고, 외출을 줄이며 실내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 이런저런 상상을 다 해봅니다. ‘마음 전문가’로서 한 말씀 올려보았습니다. “웬 엉뚱한 이야기?”라고 하시지 말고 상상하시면서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비록 법적,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지만 마스크를 매점매석(買占賣惜)한, ‘값이 오를 것을 예상해 한꺼번에 많이 사두고 되도록 팔지 않았던’ 사람들은 정말 초강력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았나요? 그들은 상상했는데 왜 정부는 상상하지 못했을까요? 앞으로 두고두고 풀어야 할 의문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약국에 가야 하나, 참아야 하나, 오전이 좋을까, 오후가 더 좋을까 갈등하며 화를 참으며 고민 중입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