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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된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총선 제1당 싸움 ‘절대반지’ 될까[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20-03-11 03:00:00

미래한국당 이어 여권 비례연합 부상




지난달 5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미래한국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왼쪽에서 세 번째)와 심재철 원내대표(왼쪽에서 두 번째) 등 미래통합당 지도부가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그동안 미래한국당을 ‘꼼수’라고 강하게 비판해온 더불어민주당은 4·15총선이 임박하면서 결국 자신들도 비례대표용 연합정당에 참여해야 할지를 두고 깊은 고심에 빠졌다. 동아일보DB

김지현 정치부 기자

“자유한국당에서 정말 ‘비례한국당’을 만들려는 것 같습니다.”

2019년 12월 초 국회.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 A 의원이 급하게 정의당 협상팀 방문을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4+1(민주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및 대안신당) 협의체’로 공조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협상 중이었다. △지역구 250석, 비례대표 50석 △연동률 50% △연동률이 적용되는 비례대표 의석수 상한선(cap·캡) 30석을 큰 골자로 합의한 상태에서 세부 내용을 두고 막판 조율 중이던 상황.

A 의원은 정의당 원내지도부 관계자에게 “비례대표 의석수 상한선을 30석이 아닌 20석으로 제한하자”고 긴급 제안했다. 전체 비례대표 47석 중 20석에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하고, 나머지 27석은 현행대로 정당 득표율을 기준으로 단순 배분하는 병립형으로 운영하자는 것. 최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A 의원은 “당시 한국당 원내지도부도 ‘20석 캡이라면 (개정 선거법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들 했다. 그때 지지율로 계산할 경우 20석 캡이면 한국당은 종전 선거 때보다 비례대표 3, 4석을 손해 보는 수준이었다. 한국당이 그 정도 손해 때문에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이라는 ‘꼼수 리스크’를 감수하진 않을 거라 보고 정의당에 양보를 제안했던 것”이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정의당은 단호했다. “아무리 한국당이라 해도 비례한국당은 절대 못 만든다”며 오히려 거세게 반발했다고 한다. 한국당의 ‘블러핑(bluffing)’이라는 것. 개정 선거법대로라면 가장 큰 의석수 수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됐던 정의당으로선 믿고 싶지 않은 추측이었을 수도 있다. 결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등 검찰 개혁법안 통과에 마음이 급했던 민주당은 비례 위성정당의 탄생을 예감하고도 4+1 협의체끼리 만든 선거법 개정안을 지난해 12월 27일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당장 한 달 뒤 불거질 진보진영 비례 연합정당 논란의 서막이었다.

○ 현실이 된 ‘비례 위성정당’

한국당이 위성정당 카드를 공개적으로 꺼내 든 건 지난해 12월 19일이었다. 4+1 협의체와 ‘머릿수 싸움’에서 계속 밀리다가 내놓은 최후의 수단이었다.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당시 의원총회에서 “만일 연동형 비례대표 선거제를 밀어붙인다면 우리는 ‘비례한국당’을 만들 수밖에 없음을 미리 말씀드린다”고 했다. 한국당은 지역구 후보만 내고, 비례대표 전용 위성정당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개정 선거법에 따르면 정당 지지율 30%를 얻은 정당은 전체 의석수(300석)의 90석을 산술적으로 받을 수 있는데, 만일 지역구에서 90석 이상을 얻으면 비례대표 의석은 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한국당 같은 거대 정당 입장에선 위성정당을 만들어 그쪽에 정당 투표를 하도록 해 비례대표 배분에 참여시키는 게 유리하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4+1 협의체는 물론이고 한국당 내에서도 “설마 그게(비례정당이) 가능하겠느냐”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하지만 막상 선거법이 통과되자 비례한국당 창당 논의도 급물살을 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비례○○당’ 명칭 사용을 불허했지만 창당준비위원회는 곧장 ‘미래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정당투표 용지에서 앞쪽 순번을 받을 수 있도록 의원 확보 작업도 일찌감치 시작했다. 황교안 대표가 직접 나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한국당 현역 의원들을 설득했다.

황 대표는 2월 5일 열린 미래한국당 중앙당 창당대회에 참석해 “(자유한국당과) 미래한국당은 한마음, 한몸으로 움직이면서 문재인 정권 심판의 대의를 위해 손잡고 달려갈 것”이라고 격려했다. 미래한국당 대표와 사무총장은 한국당 소속이던 한선교 의원과 조훈현 의원이 각각 맡았다.

온갖 잡음 속에서 탄생한 미래한국당은 결국 2월 13일 선관위에 정당 등록을 마쳤다. 2월 27일엔 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구성하고 비례대표 공천 작업에 들어갔고, 3월 3일엔 한선교 대표가 비교섭단체 대표로 본회의장에서 연설도 했다. 사실상의 공식 원내 데뷔 무대까지 마친 것이다.

○ 눈 뜨고 코 베인 범여권

예상보다 빠른 미래한국당의 탄생에 범여권은 당황했다. 2월 13일 선관위가 미래한국당의 정당 등록을 받아들이자 민주당과 군소정당들은 일제히 “민주주의의 정치적 퇴행”이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대한민국 정당의 근간을 허물고 민주주의를 퇴행시킨 가짜 정당의 출현’(민주당), ‘비례대표 도적질로 한몫 챙기는 유령단체’(바른미래당), ‘헌정사를 지켜온 한국 정당정치의 큰 위기’(대한신당) 등 맹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민주당은 황교안 대표와 한선교 대표를 정당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하는 등 가장 강경하게 나섰다. 새해 들어 열린 민주당 회의 때마다 한국당의 위성정당 창당을 맹비난하는 지도부의 융단 폭격이 이어졌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2월 1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미래한국당은 종이 정당이고, 창고 정당이며, 위장 정당이고 한마디로 가짜 정당”이라고 표현했다.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 등이 통합한 신당)을 향해선 “정당정치의 근간을 뒤흔드는 ‘참 나쁜 정치’이며 한국 정치사에 두고두고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때 이미 수면 아래에선 기류가 바뀌고 있었다. 4·15총선이 약 두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명분만 앞세우다간 선거에서 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

마침 1호 영입인재 원종건 씨의 성추문 논란을 시작으로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 칼럼 ‘민주당만 빼고’에 대한 고발 사태, ‘조국 백서’ 필진인 김남국 변호사 공천 논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실언 등 민주당에 악재가 줄줄이 이어졌다. 반면 그 사이 보수통합을 마친 한국당은 물갈이 등 공천 작업에 속도를 냈다. 내용도 속도도 민주당에 비해 혁신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야당 복은 타고났다”며 안심하던 민주당 내에서 비례정당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시점이다.

포문은 원외 인사들이 열었다. 민주당 출신 무소속 손혜원 의원이 2월 20일 “민주당의 위성정당이 아닌 민주시민들을 위한, 시민이 뽑는 비례정당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위성정당 창당을 주장했다. 다음 날엔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도 가세해 “이번 선거에서 민심이 왜곡될 우려가 있다는 걱정이 있다. (비례민주당 창당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전까지 선 긋기에 바쁘던 이 원내대표도 2월 23일 기자들과의 오찬 자리에선 “‘의병’들이 나서서 (비례정당) 만드는 걸 우리가 말릴 수는 없지 않느냐”는 묘한 발언을 했다. 불과 5일 전 ‘종이 정당’이라던 위성정당이 어느새 ‘의병’으로 바뀐 것. 여권 관계자는 “이 원내대표의 평소 화법을 고려해볼 때 의병(외적의 침입으로 위급할 때 민중이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대항해 싸우는 구국민병)이란 단어도 굉장히 고심해서 골랐을 것”이라며 “사실상 당 바깥에 도와 달라는 SOS를 보낸 것 아니냐”고 해석했다.

실제 이 직후 진보·개혁진영 시민단체들이 추진하는 비례대표용 연합정당 ‘정치개혁연합’(가칭) 창당 논의가 본격화됐다. 정치개혁연합은 2월 28일 민주당, 정의당, 민생당, 녹색당 등 범여권 정당들에 합류를 제안하고 창당 절차를 밟고 있다.

○ 원내 1당 포기할 수 없는 민주당의 선택은

비례한국당 창당에 한 번 놀라고, 민주당의 위성정당 구상에 두 번 놀란 군소정당은 사분오열하고 있다. 일단 정의당과 민생당은 비례 연합정당 참여 불가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당 내부에선 “이러다 우리 몫만 뺏긴다”며 참여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지원 민생당 의원은 9일 라디오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비례 연합정당 참여에) 찬성하고 유성엽 공동대표 등 중진들도 찬성하지만 일부에서는 반대하기 때문에 사실상 결정을 못 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조국 사태’에 이어 또 한 번 ‘내로남불’이란 소리를 듣게 된 민주당으로선 한국당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정의당과 민생당 등 군소정당을 안고 가야 하는 상황. 지난해 말 공수처에 발목이 잡혀 4+1 협의체에 의존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명분과 제1당 사수를 위해 군소정당과의 공조가 불가피해진 셈이다.

4·15총선에 불출마하는 한 민주당 의원은 “나처럼 이제 더 이상 정치에 욕심 없는 사람 입장에서 비례정당은 민주당이 공당으로서 꺼내서는 안 되는 얘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앞으로도 정치를 더 해야 하는 사람들로선 욕을 먹을지언정 제1당 지위는 뺏길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과정을 거치면서 원내 1당의 지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래서 국회의장을 배출하는 게 얼마나 절실한지 민주당은 절감했다. 과연 비례 위성정당 카드는 정권 후반기 민주당을 지켜줄 ‘절대 반지’가 될 수 있을까. 이제 공은 민주당 당원들에게로 넘어갔다.
 
김지현 정치부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