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효림 문화부 차장
“올해 2월에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입학한 지 무려 15년 만이네요. 하하.”
아버지와 함께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난 후 다시 일어선 정재엽 씨(46)였다. 얼마 전 소식을 전해온 그에게서 싱그러운 기운이 느껴졌다. 그는 2013년 회사 부도를 맞은 후 고통을 견뎌낸 과정을 담은 책 ‘파산수업’(2016년)을 출간했다.
“어떤 답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 되니 절망이란 게 뭔지 알겠더군요. 부여잡을 수 있는 뭔가가 절실히 필요했어요. 그래야 숨을 쉴 수 있었으니까요.”
그는 안간힘을 쓴 끝에 회사를 회생시켜 매각했다. 지금은 벤처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졸업생 대표로 연설할 예정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졸업식이 취소되는 바람에 연설을 못 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그래도 이런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기쁘고 감사하다”고 했다. 그가 읽었던 작품의 작가들은 알았을까. 자신의 글이 삶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던 한 사람을 일으켜 세운 버팀목이 될 것이라는 걸.
진심을 담은 말 한마디도 힘을 준다. 오랜 기간 남편의 병간호로 몸과 마음 모두 기진맥진했던 한 작가가 들려준 이야기다.
“사방을 둘러봐도 기댈 곳 하나 없는 것 같았어요. 그때 어릴 적부터 단짝으로 지내던 친구가 등을 가만가만 쓸어주며 말했어요. ‘(신께서) 나중에 한 보따리 주실 거야’라고요.”
불안과 공포가 일상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예민함과 분노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무언가가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해 보인다. 그 무언가는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건 자기만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다만 한마디 말, 한 구절의 글 또는 한 권의 책이 생각과 감정을 다스리는 의미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걸 머릿속 한편에 담아두었으면 좋겠다. 말과 글의 잔향은 오래도록 남아 삶의 고비, 고비마다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될 것이다. 그 언덕은 생각보다 든든할지 모른다. 말과 글은 힘이 세다.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