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어제 영국을 제외한 유럽에서 미국으로 오는 모든 여행객의 입국을 향후 30일간 중단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가 유럽 전역으로 번지면서 사태 초기 중국에 실행해온 조치를 유럽 대륙에도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앞서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확산에 대해 전염병 최고 경보 단계인 ‘팬데믹(대유행)’을 공식 선언했다.
슈퍼파워 미국의 대유럽 인적 교류 차단은 유례를 찾기 힘든 초강력 조치다. 미국에 있어 유럽은 대다수 국가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이자 긴밀한 인적·물적 교류로 엮인 ‘서방 공동체’다. 그런 유럽 대륙과의 인적 왕래 단절은 흡사 제1, 2차 세계대전 당시를 연상시킬 정도다. WHO가 뒤늦게 팬데믹을 선포하며 각국에 보다 공세적 행동을 촉구하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은 곧장 ‘국가 간 거리 두기’, 나아가 ‘대륙 간 거리 두기’에 나선 셈이다.
미국의 조치는 팬데믹의 차단과 봉쇄를 위한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겠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침식해온 보호주의·민족주의 같은 배타주의적 역류와 무관치 않다. 중동·아프리카 난민들의 대규모 유럽행은 유럽의 극우주의 득세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나아가 미국의 트럼프주의로 이어졌다. 반(反)이민 장벽을 세우고 무역전쟁을 불사하며 보호주의 장벽을 높인 미국이다. 여기에 ‘바이러스 고립주의’ 장벽까지 추가한 것이다.
한시적인 단절과 차단이 세계화·정보화의 도도한 물결로 생성된 초연결 지구촌을 무너뜨리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심리적 후유증은 큰 트라우마로 남아 국제적 행동 양식을 바꿀 것이다. 이제 팬데믹은 ‘새로운 현실’이고, 한국은 그 한복판에 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주춤해졌다고, 미국의 입국 금지에서 빠졌다고 안도할 처지가 아니다. 더욱 철저한 방역은 물론 국제적 공조 외교, 민생경제 부양책 같은 신속한 대응과 함께 각자도생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국가안보 차원의 전략 수립에 나설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