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마이클 돕스 지음·허승철 옮김/672쪽·3만5000원·모던아카이브
1991년 8월 19일 소련 보수파 쿠데타 세력의 탱크에 올라간 보리스 옐친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문건 든 사람)이 쿠데타에 굴복하지 말라는 호소문을 읽고 있다. 아래 군중 쪽을 보고 있는 사람(원 안)이 저자 마이클 돕스. 모던아카이브 제공
워싱턴포스트의 모스크바 지국장을 지낸 저자는 폴란드 자유노조와 군중이 운집한 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광장, KAL기 격추 직후의 사할린을 돌아다녔고 소련 보수파 쿠데타에 맞서 옐친이 탱크 위에 올라간 순간 그 아래 있었다. 또 소비에트와 동구권 붕괴를 촉발하고 저지한 거의 모든 주인공을 만났다.
소련의 죽음이 시작된 시기를 그는 1980년 5월 유고슬라비아 지도자 티토의 장례식에서 찾는다. 이날 어떤 역사적 사건도 시작되지 않았다. 그러나 저자는 각국 공산당 지도자들의 경직된 모습에서 곧 무너질 세계질서를 직감한다.
소련이라는 노쇠한 거인을 병상에 눕게 한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경직된 계획경제의 모순, 낮은 인권수준과 자유에의 동경 등은 다 아는 얘기다. 저자가 의도적으로 부각하려 하지 않지만 석유는 이 드라마에서 주요 결정요인으로 등장한다.
1960년대 시베리아 유전이 개발되면서 소련은 복권을 맞았다. 농업 생산성이 떨어져 곡물을 수입하는 지경이 되었는데도 석유를 팔아 서방에서 곡물을 사고 제3세계 동맹국을 지원했다. 1985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도로 유가가 폭락했고 4년 뒤 석유 수출은 반 토막이 났다. 제국은 버틸 힘이 바닥났고 변화를 피할 수 없었다.
새 지도자 고르바초프는 중재에 능했고 자신의 줄타기를 믿었지만 소련의 체제 내 개혁이 가능하다고 오산한 점은 한계였다. 신문에 보수파 옹호 기고가 실리자 위기를 느낀 그는 소련 최초의 민주 선거와 인민대표회의 설치로 저울추를 돌려놓았다. 그러나 봇물 터진 ‘입’은 ‘고르비’를 방어하기는커녕 무너뜨렸다. 옐친 역시 보수파 견제를 위한 균형추로 허용한 카드였지만 지나치게 커질 카드였다.
과거에 특권 사수를 위해 절대적 충성을 보였던 엘리트층은 그럴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경제체제의 모순을 이용해 한몫 챙기는 게 훨씬 쉬웠기 때문이다. 결국 당이 해체되던 순간 막겠다고 나서는 ‘당원동지’는 없었다. ‘공산주의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 패배한 것이 아니라 자멸했던’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아니더라도, 이 봄은 많은 사람에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크고 무거운 책을 읽기 좋은 때다. 이 책은 집중적인 독서에 필요한 교훈과 효용성, 재미, 정보량 모두를 갖췄다. 다만 교열에는 시간이 부족했던 듯하다. 1996년 영어 원서가 나온 만큼 최신의 정보를 기대할 수는 없다. 원제 ‘Down with big brother: The fall of the Soviet Empire’.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