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캠벨은 영국 출신의 흑인 모델입니다. 흑인 모델들이 많지 않은 패션계에 눈에 띄는 외모와 아름다운 몸매, 그리고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데뷔와 동시에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1990년대 유일한 흑인 슈퍼모델이었기에 유명했고 흑인 모델로는 최초로 패션매거진 미국판 보그의 표지모델로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죠. 하지만 그녀의 유명세는 따로 있었습니다. 다혈질적인 성격 탓에 싸움닭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였으니까요. 자신의 비서들을 구타하거나 운전기사를 하이힐로 찍어 내리는 등의 일로 뉴스에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녀를 보려면 자선 행사의 초대 명단을 뒤져야 합니다. 자신이 겪었던 인종차별의 벽을 후배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지 ‘다양성 연대(Diversity Coalition)’라는 단체를 지인들과 만들어 백인 모델로 가득 찬 런웨이를 바꾸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유엔이 주최한 여성폭력 근절 캠페인인 ‘여성에게 평화를(UN Women in Peace)’에서 연설과 행진을 하기도 했답니다.
이번 방호복 패션을 통해서도 그녀는 바이러스의 위험에는 성별이나 인종, 국적에 상관없이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듯합니다. 방호복을 입는 목적은 외부의 바이러스에서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 우선입니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정작 방호복을 입게 되면 입은 사람의 성별이나 인종, 국적은 알아보지 못합니다. 바이러스는 이런 것들을 따지지 않습니다. 보이는 적보다 보이지 않는 적이 더 무서운 것처럼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도 무섭지만 보이지 않는 편견과 차별은 더 무섭습니다.
이 기회에 지금 방호복을 입고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우리나라의 모든 의료진께 큰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비단 저만 이런 감정을 느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부디 방호복이 보이지 않는 공포와 우울함에서 그분들을 보호해 주었으면 합니다. 흰색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모두 ‘백의의 천사’입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