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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돈 빌려 투자한 개미들 “반대매매 압박에 피가 마른다”

입력 | 2020-03-16 03:00:00

강제처분 하루 137억… 11년만에 최대
하루 평균 미수금 석달새 27% 늘어… 일부, 주식 다 팔아도 ‘깡통계좌’ 우려
은행 영업점 등 환매문의 쇄도… 전문가 “섣부른 저점판단 주의를”




“반대매매 압박에 매일 피가 마르는 것 같습니다. 가족들한테까지 돈을 빌려서 막아 보고 있는데….”

직장인 김모 씨는 최근 아침에 일어나 증시를 보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억대의 자산을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데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증시가 바닥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얼마 전 하락장이 이어질 때 곧 반등할 것으로 믿고 증권사로부터 단기자금을 빌려 추가로 주식을 샀다. 하지만 주가는 더 떨어졌고 증권사가 김 씨에게 반대매매(주식을 강제로 팔아서 빌린 돈을 회수하는 것)를 압박하는 상황에까지 몰렸다. 김 씨는 “어떻게든 주변에서 돈을 빌려 주식이 처분되는 것만은 막아 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주식 외상값에 개미투자자 휘청

최근 국내 증시가 폭락하면서 외상으로 산 주식(미수거래)의 결제대금을 제때 내지 못해 반대매매를 당하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증권사는 미수거래 이후 3거래일 안에 투자자가 돈을 갚지 못하면 4일째 되는 날 남은 주식을 강제로 팔 수 있다. 코스피와 코스닥지수는 올해 초에 비해 각각 19.4%, 21.8% 떨어졌다. 15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들어 12일까지 주식 반대매매 규모는 하루평균 137억 원에 달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있던 2009년 5월(143억 원) 이후 약 11년 만에 가장 큰 액수다. 지난해 12월 1769억 원 수준이던 하루평균 미수금도 이달 들어서는 12일까지 2246억 원으로 늘어났다. 2011년 8월(2644억 원) 이후 8년 7개월 만의 최대다.

돈을 빌려 주식을 산 투자자들이 하락장에서 받는 충격은 일반 투자자들보다 더 크다. 자칫 주식을 다 팔고도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코스닥 시장을 중심으로 52주 신저가 종목이 속출하고 있어 반대매매 규모가 더 커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 “지금이라도 손절해야 하나” 펀드 불안도 커져

은행 영업점 등을 중심으로 자산 손실을 우려하는 투자자들의 상담과 문의도 쏟아지고 있다. 한 시중은행 프라이빗뱅커(PB)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금융시장이 얼어붙다 보니 불안감을 느낀 투자자들의 환매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테크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들에는 “5년 동안 쌓아 올렸던 펀드 수익이 하루아침에 날아갔다” “손실이 더 커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발을 빼야 하는 것이냐”며 조언을 구하는 글들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은행들은 비상대응체제를 가동하고 동요하는 고객들을 안심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근 신한은행은 현재 상황을 비상계획상 최고 위험 단계인 ‘심각’으로 높이고 고객들에게 금융시장 동향 등을 설명하는 장문문자메시지(LMS)를 보내고 있다. 국민은행과 하나은행도 비상대응체제를 가동해 고객 상품의 위험도를 점검하고 시나리오별 대응전략을 바탕으로 문의에 대응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변동성이 큰 장세에서는 당분간 관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투자전략팀장은 “지금은 섣불리 저점을 판단해 무리하게 투자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급전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폭락장에서 환매로 손실을 확정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박승안 우리은행 TC프리미엄 강남센터장은 “긴급하게 자금이 필요하면 기술적 반등 시기를 노려 매도하고 여유가 있다면 장기적 관점에서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자현 zion37@donga.com·김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