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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쏭달쏭 여론조사, 더 위험한 집단사고[광화문에서/길진균]

입력 | 2020-03-16 03:00:00


길진균 정치부 차장

“여론조사 결과를 믿어도 될까?”

요즘 여야 의원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이다. 체감하는 정부 여당에 대한 민심은 바닥인데 각종 조사에서 나타나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지난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는 민주당 지지율 39%, 미래통합당 22%. 다른 조사에서도 민주당은 통합당을 꽤 앞서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문파들이 여론조사에 적극 응답하고 있다”는 설을 자주 접한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의 답변이 과도 표집, 다시 말해 여론조사에 더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침묵의 나선 이론’ 등을 언급하며 야당 지지자들은 자신의 의견을 감추려 한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가능성 있는 얘기다. 다만 “매우 이례적이진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처음 나온 주장도 아니다. 박근혜 정부 때도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응답한 비율이 실제 박 전 대통령 득표율보다 꽤 높았다.

그렇다면 체감 민심과 다른 여권 지지 여론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우선 이전과 정치 지형과 구도가 달라졌다. 20대 총선까지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비율은 대체로 보수 35%, 진보 25% 정도였다. 보수 성향 유권자가 10%포인트가량 더 많았다. 중도는 약 30%였다. 지금은 다르다. 3월 2일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진보 28.7%, 보수 26.1%, 중도 36.5%다. 목소리가 크지 않은 중도가 상대적으로 많이 늘었다. 극심한 진영 대결 구도 속에서 핵심은 중도층의 응답인데, 이 중도층에서 민주당과 통합당의 지지가 37.3% 대 18.8%로 두 배가량으로 벌어진다.

정치 현장에서 체감하기 어려운 두꺼운 여권 지지층은 또 있다. 30, 40대 화이트칼라 사무직이 대표적이다. 한국갤럽의 13일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는 ‘잘하고 있다’가 49%, ‘잘못하고 있다’가 45%로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화이트칼라는 ‘잘하고 있다’ 60%, ‘잘못하고 있다’가 36%로 차이가 벌어진다. 각종 데이터를 보면 화이트칼라 응답자는 전체의 20∼30%로 직군별 비중이 가장 크다. 자영업자(15% 안팎)의 두 배 수준.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조국 사태’ 직후에도 화이트칼라의 민주당 지지는 영남에서도 여전히 견고했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19일 한길리서치의 부산시민 1002명 상대 여론조사에 따르면 당시 문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는 ‘부정’(46.2%)이 ‘긍정’(38.6%)보다 많았지만 화이트칼라의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32.4%, 통합당 10.5%였다. 이들은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으로 문재인 정부의 혜택을 상대적으로 많이 본 계층. 여기에 과거보다 2배가량 높아진 여권에 대한 호남의 지지율도 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이 같은 데이터를 간과하게 만드는 건 보수층 일부의 집단사고가 아닐까 싶다. 특정 인터넷 포털의 댓글들과 극우 성향 유튜브 뉴스들은 현 정권을 거의 저주하다시피 하고 있다. 반문(反文) 정서가 대다수인 것으로 인지하게 만드는 환경이다. 캐스 선스타인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토론하고 나면 평소 생각보다 더 극단적인 생각을 갖는 경향을 보인다”고 했다. 여든 야든 선거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함정은 충성도 높은 지지자들의 목소리를 전체의 여론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