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우리 눈에는 봄이 오면 저절로 싹이 나고 꽃이 피는 것 같지만 세상에 공짜가 없듯 저절로 또한 없다. 사실 식물들이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들이는 노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예를 들어 요즘처럼 날씨가 조금 따뜻해졌다고 성급하게 꽃을 내는 건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다. 심술궂은 꽃샘추위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 그렇다고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망설이거나 여유를 부리면 자칫 때를 놓칠 수도 있다.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
요즘 풀밭에 가보면 눈곱만큼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긴 하지만 벌써 활짝 핀 꽃들이 있다. 겨우내 한파에 시달렸던 냉이꽃이다. 알다시피 냉이는 겨울이 되어도 다른 식물과 달리 땅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버틴다. 온 몸을 땅바닥에 착 붙인 채 온 겨울을 떨며 보낸다. 그냥 땅속으로 들어가면 쉬울 텐데 왜 고생을 사서 할까. 그래야 요즘 같은 봄이 왔을 때 재빨리 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녀석들이 살아가는 세상에도 삶이 있고 경쟁이 있는데 이런 경쟁을 피하는 전략이다. 반면 봄이면 세상을 노랗게 만드는 개나리는 잎보다 꽃을 먼저 내는데 이 역발상 역시 짝짓기(수분) 기회를 선점하기 위해서다.
사실 무엇보다 감탄스러운 건 대부분의 꽃이 누구보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1년 전부터 준비한다는 것이다. 봄이 왔을 때 준비하면 늦으니 상황이 가장 좋을 때, 그러니까 지난해 봄이나 여름처럼 모든 것이 풍성할 때 이듬해 필요한 잎과 꽃을 미리 만들어 둔다. 겨울에 나무에 달린 겨울눈을 칼로 잘라보면 알 수 있다. 마치 잘 개어 놓은 옷처럼 잎과 꽃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꽃들은 이런 보이지 않은 수많은 노력의 결과다. 보면 볼수록 우리가 우리 삶을 아름답게 꽃 피우려는 것과 어찌 이렇듯 같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살아가는 원리는 어디서나 같은 듯하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