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대란서 드러난 부실 컨트롤타워… 시장개입까지 했지만 물량부족 그대로 공급 독점 논란 겹쳐 국민 불신 증폭… 더 큰 위기 대응할 로드맵 갖고 있나
이지홍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위기 시 국가 컨트롤타워는 세 가지 원칙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첫째, 가능한 모든 경우들을 상정하고 상황마다 사용 가능한 수단을 면밀히 파악하여 이에 대응하는 정책 로드맵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 둘째, 위기가 현실로 닥쳤을 때 준비된 로드맵에 따라 정책들을 투명하고 일관되게 집행해야 한다. 셋째, 정부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 그리고 해서는 안 될 일을 명확히 구분해 불가피한 시장 개입은 최소화하고 성급한 시장 개입은 자제해야 한다. 지극히 상식적인 매뉴얼이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 결코 안심하고 있을 상황이 아닌 것 같아 우려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마스크 대란을 보자. 이 정부는 시민들을 매일같이 약국 앞에 장시간 줄 세우고 있다. 하루 마스크 생산량이 1000만 장이 넘는 세계 최고의 제조업 국가에서 어쩌다가 일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나. 문제의 발단은 마스크가 대량으로 해외로 빠져나가 내수 시장의 공급이 줄어 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이는 취약계층의 고통으로 직결됐다. 만일 정부가 자국민의 마스크 수요가 폭발할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면 애초에 수출을 부분적이라도 제한하고 유사시를 대비해 비축해 두었을 것이다. 업체들과 선제적으로 계약을 맺어 미래에 생산될 물량을 선구매하는 것도 가능했다.
급기야 정부는 시장에 직접 개입하고 ‘공적 마스크’란 대책을 들고나왔다. 매주 마스크 두 장을 겨우 손에 쥘 수 있게 됐다. 이미 붕괴해버린 시장에 성급하게 나서야만 했던 불가피성도 이해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공적 마스크가 왜 굳이 소수의 업체에 공급 독점권을 주고 약국을 통해서만 구입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돼야만 했는가. 정부가 일괄적인 중간 도매상의 역할을 하되 모든 생산자와 유통업자가 참여하는, 보다 효율적인 시장을 어렵지 않게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다. 훨씬 더 복잡하긴 하지만 한전과 전력거래소가 실제 이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물론 현 대책의 가장 큰 맹점은 고정된 가격 때문에 공급을 늘릴 인센티브가 없다는 것이다.
이번 마스크 대란은 온 국민을 대상으로 경제원론 강의를 톡톡히 하고 있다. 변화하는 정세에 어떻게 시장이 반응하고 정부의 안일한 판단과 잘못된 개입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모두가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 정부는 시장의 보완재이지 결코 대체재가 될 수 없다. 지금이라도 당장 계획이 빠진 계획경제 대신 시장 공급을 확대하는 유인책을 추진해야 한다.
정부의 진정한 역량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 적나라하게 판가름 난다. 그리고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정부의 제대로 된 역량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다가오는 글로벌 경제위기는 금융시장의 마비, 기업들의 줄도산, 그리고 대규모 실업까지 이어지는 연쇄 반응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국가 시스템 전체의 붕괴 상황에까지 치달을 수도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 사회가 그동안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축적한 저력이다. 한국 경제는 분명히 많은 충격에 대응할 ‘항체’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와 견줄 전문가 그룹도 있다. 이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해야만 한다. 대한민국호(號)의 현 선장과 선원들이 부디 사태의 심각성을 직시하고 현명한 리더십을 발휘해주기 바란다.
이지홍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