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민간의 창의성 못 따라가 민주주의 살린 ‘방역모범국’ 되길
신연수 논설위원
사실 이런 반전은 한국 정부가 유능해서라기보다 선진국 정부들이 더 무능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얼마 전까지 코로나에 대해 ‘독감보다 심각하지 않다’며 의도적으로 축소했고 독일 프랑스 등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었다. 영국은 수석 과학고문이 “국민 60∼70%가 감염되면 저절로 집단 면역이 생긴다”고 했다가 비판만 받았다.
초기에 방심했던 선진국들은 뒤늦게 전쟁 상황에 준하는 극단적 조치들을 내리고 있다. 프랑스는 아예 외출금지 명령을 내렸고 미국은 식당들까지 폐쇄했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민주주의 국가들이 중국처럼 해외 출입국은 물론이고 국내 이동도 전면 봉쇄한 것이다. 일찌감치 승기를 잡은 중국은 이번 사태를 사회주의 체제 선전의 계기로 삼는다고 한다. 중국의 선전엔 동의할 수 없지만, 예측하기 힘든 전염병에 직면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익숙한 미국과 유럽이 중국보다 더 허둥대는 것은 이해할 만한 측면이 있다.
마스크뿐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는 재난이 닥쳤을 때 정부의 책임과 민간의 역할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곳곳에서 던지고 있다. 드라이브스루 진단과 약국 시스템을 이용한 마스크 확인은 모두 국민의 아이디어를 정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공무원이 먼저 생각해내지 못했다고 질책할 필요는 없다. 민간에는 창의적 에너지의 거대한 저수지가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나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민간을 억누르고 감시하는 권위주의 정부 아래서는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제 한국처럼 국내외 이동을 강제로 막지 않고 특별입국절차와 자발적인 ‘사회적 거리 두기’에 의존하는 나라는 거의 없는 듯하다. 만약 이대로 방역에 성공한다면 세계 유수 언론들이 칭찬한 것처럼 ‘방역에도 민주주의 체제가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지 모른다.
아무리 유능한 정부라도 민간의 창의와 역량을 따라갈 수 없다. 중앙정부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지자체가 보완하고, 지자체도 못하는 일은 국민들이 앞장서는 것이 바람직한 사회일 수도 있다. 설사 아주 유능한 정부가 있다 하더라도, 정부와 공무원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하고 국민들은 따르기만 하는, 그런 사회를 정말 원하는가. 어쩌면 그것은 영화 ‘신문기자’에 나오는 대사처럼 ‘형태만 남아 있는 민주주의’일지도 모른다.
국민의 창의성과 자발성을 잘 엮어내는 것도 정부의 능력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전염병 대처 능력뿐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민주주의적 과정’에 대한 시험대이기도 하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