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예선 맞대결을 앞둔 2009년 3월 북한 김정훈 감독(오른쪽)과 한국 허정무 감독이 기자회견장에서 남북한 동반 진출을 다짐했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우리에게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은 원정 사상 첫 16강의 쾌거를 이룬 대회로 기억된다. 당시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16강에 진출했지만 우루과이에 2 대 1로 패했다.
북한에 남아공 월드컵은 악몽 같은 패배의 기억이다. 첫 경기에서 북한은 브라질과 만나 접전을 펼쳤지만 2 대 1로 아깝게 패배했다. 그러자 평양이 흥분했다. 브라질과 거의 비등하게 싸울 정도면 두 번째 경기인 포르투갈전은 이길 수 있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북한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앞세운 포르투갈에 7 대 0으로 비참하게 완패했다. 허무한 패배의 현장은 북한 안방에 그대로 전달됐다. 얼마나 충격이 컸는지 4·25체육단에 모여 응원하던 북한군 장성들 중에서 총참모부 종합계획국과 축지국의 소장(한국 준장) 두 명이 심장마비로 사망할 정도였다.
월드컵이 끝나고 한 달 뒤쯤 한국 언론과 외신들에는 김정훈 감독이 건설장에서 강제노동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그는 그해 11월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의 ‘감독의 밤’ 행사에 참가했다. 강제노동설은 지금도 북한 보도의 대표적 오보 사례로 조롱받고 있다.
그러나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다. 당시 김 감독이 귀국 후 강제노동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것도 그냥 건설장이 아니었다. 비행장에 내리는 즉시 체포돼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북한군 노동교화연대에 끌려갔다. 김 감독의 원 소속팀인 4·25체육단은 군 소속이라, 형기를 받은 군인 죄수들이 수감돼 강제노동을 하는 곳에 간 것이다.
김정은의 지시는 아니었다. 그가 언제 분통을 터뜨릴지 몰라 수하의 아첨꾼들이 미리 손을 쓴 것이다. 당시 선수들은 다행히 1주일 동안 사상투쟁회의를 하는데 그쳤다.
북한은 부랴부랴 김 감독을 석방해 평양 낙랑구역 보위사령부 초대소에 데려다 빡빡 깎았던 머리를 기르게 하고, 몸 보양도 시키며 두 달 가까이 부산을 떤 끝에 11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를 AFC 행사에 출석시켰다.
해외에 나와 있던 북한 관계자들은 김 감독의 숙청설이 나오자 그가 원 소속팀인 4·25체육단 축구감독으로 돌아갔다고 해명했다.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석방된 김 감독은 4·25체육단의 2군 격인 소백수축구팀 감독으로 강등됐다.
이렇게라도 살아나는 듯했던 김 감독은 몇 달 뒤 아내와 딸까지 포함해 온 가족이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누구도 그의 생사를 아는 사람이 없다. 그가 왜 사라졌는지에 대해선 북한에서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김 감독이 사라진 이유는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출신인 아내 때문이었다. 아내는 역시 무용수 출신으로 김정일의 부인이자 김정은의 모친인 고용희와도 친분이 있었다. 축구 영웅으로 존경받던 남편이 월드컵 이후 하루아침에 죄수가 되자 아내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구명운동을 시작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는 여러 간부들을 만나 고용희와의 친분까지 입에 올렸다.
김 감독과 가족은 어디로 끌려갔을까. 지방에 추방시켜도 소문이 퍼질 위험은 남아 있다. 그러니 처형은 면했다 해도 완전통제구역인 정치범수용소에 보내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때로부터 벌써 10년 가까이 지났다. 살아 있긴 할까. 44년 만에 북한을 월드컵 본선 무대로 이끌었던 김정훈 감독이 숙청된 뒤 북한 축구는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