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韓美 600억 달러 규모 체결
한국이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면서 ‘외환위기가 다시 오는 것 아니냐’는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였던 외환시장이 한숨을 돌리게 됐다.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하는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는 그 자체로 훌륭한 외환시장 방파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안전판 확보, 한숨 돌린 외환시장
19일 오후 10시 한국은행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최소 6개월간 600억 달러 규모의 양자 간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한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물밑 협상을 이어오던 한은은 달러 품귀현상으로 원화 가치가 급격하게 미끄러지자 서둘러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카드’를 제시한 것이다. 이로써 19일 현재 한국은 총 1932억 달러 이상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하게 됐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도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서 환율이 급등하자 한미 통화스와프를 다시 맺어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었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2월 말 현재 4092억 달러로 세계 9위 수준으로 과거에 비하면 ‘외환 방파제’를 비교적 높게 쌓아 놨다. 하지만 지금처럼 환율이 치솟으며 달러 수급이 불안정해질 때는 이마저도 충분한 규모라고 안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환보유액은 그리 높지 않고 단기외채 비율도 34%에 달한다”며 “국제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면 급격히 빠져나갈 수 있어 안전하다고 자신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물밑 작업을 해왔다.
○ 달러 구하기 경쟁에 환율 폭등
달러스와프 체결 소식이 들리기 전 19일 서울 외환시장은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날’을 보냈다. 특히 장중 환율 고점과 저점 차이가 50원에 육박할 정도로 크게 벌어지면서 외환시장은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였다. 외환딜러들은 “너무 아찔해서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고 했다.
이날 오전에 가파르게 오르던 환율은 오전 11시경엔 1291원 선까지 치솟았다. 환율 상승세가 가팔라지자 외환당국에서 “펀더멘털 대비 환율의 일방향 쏠림이 과도하다”는 구두개입이 나왔고, 상승세가 꺾이며 1270원대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안정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환율이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리자 금융시장에서는 “미국에 이어 국내에서도 ‘대학살’이 벌어졌다”는 탄식이 나왔다. 결국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40원 급등한 1285.7원에 장을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7월 14일(1293.0원) 이후 11년 만의 최고치다. 상승폭은 2009년 3월 30일(42.5원) 이후 가장 컸다. 고점과 저점 차이는 49.9원으로 2010년 5월 25일(53원) 이후 10년 만의 최대 변동폭이었다.
이날 외환시장이 요동친 배경에는 시장 불안에 따른 극단적인 달러 선호현상이 자리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 은행들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의 학습 효과로 이전보다는 훨씬 더 많은 외화를 확보해놨지만, 혹시 모를 불안감이 커지면서 달러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이제 곧 월말 결제 수요가 몰리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증시에서도 외국인투자가들이 급격하게 빠져나가면서 달러 가치 상승을 부추겼다. 하나은행 서정훈 연구위원은 “기관투자가들이 현금 확보를 위해 증시에서 돈을 빼고 있다”며 “이번에도 한국 시장이 글로벌 투자가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다”고 말했다. 외국인투자가들이 주식을 팔면서 떨어지는 원화 가치는 한국 주식의 매력도를 낮춰 또다시 증시 하락을 부채질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는 “외국자본이 추가로 더 빠져나가면 원화 가치가 안정을 쉽게 찾기는 힘들고 달러 부채를 보유한 기업들의 부담도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