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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밖에 못믿어” 주식 투매… 9년만에 시총 1000조원 밑으로

입력 | 2020-03-20 03:00:00

[코로나19 팬데믹]“달러가 왕” 글로벌 유동성 전쟁
외국인 11거래일 연속 ‘셀코리아’… 코스피 1,500선 아래로 추락
코로나 불확실성에 채권 외면… 韓-美 국채 금리 연일 상승세
러시아-브라질 등 신흥국도 패닉… “모든 경제적 상관관계 무너졌다”




주저앉는 증시… 한국도 미국도 충격 코스피가 전 거래일보다 133.56포인트(8.39%) 넘게 폭락하며 1,457.64로 마감한 19일 하나은행 딜링룸의 한 딜러가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위 사진). 이보다 앞서 장을 마감한 뉴욕증시의 다우지수는 3년 2개월 만에 ‘2만 고지’를 내주며 6.30% 하락한 19,898.92에 마감했다. 뉴시스·신화통신

“팔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팔았다. 시장은 현금이 가장 중요한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현지 시간) 현 금융시장을 이렇게 평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충격에 맞서 각국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다. 코로나발 경제 충격 공포가 극단적 ‘유동성 확보’로 이어지면서 투자자들은 기존에 안전 자산으로 분류되던 국채와 금, 은마저 팔아치우고 있다.

○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판다

19일 한국 증시는 주식을 팔아 달러로 갖고 있으려는 외국인들의 매도 공세로 속절없이 추락했다.

이날 코스피는 유럽중앙은행의 대규모 추가 양적완화 발표 등으로 전날보다 34.89포인트(2.19%) 오른 1,626.09로 출발했다. 하지만 외국인들의 매도세로 하락세로 전환해 1,500 선 아래로 내려앉았다. 이날 코스피 낙폭(133.56포인트)은 종가 기준 역대 최대다. 외국인들은 이날도 6217억 원어치를 순매도하며 11거래일 연속 ‘셀코리아’를 이어갔다. 코스피 시가총액(982조1690억 원)은 89조 원 넘게 줄어 2011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1000조 원 밑으로 떨어졌다.

코스닥지수도 개인투자자들을 중심으로 매도 물량이 쏟아지며 전날보다 11.71% 하락한 428.35에 거래를 마쳤다. 하루 하락률로는 사상 최대였다. 장중 한때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 이달 들어 두 번째 ‘서킷브레이커(매매 일시 정지)’가 발동되며 20분간 거래가 중단되기도 했다. 코스피와 코스닥에서 증발한 시총은 110조3310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이날 한국 증시의 낙폭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보다 높았다. 외국인들의 공격적인 매도가 이어지면서 물량을 받아줄 매수 여력이 부족해 하락폭이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다른 신흥국 금융시장에서도 자금이 빠르게 빠져나가면서 이들 국가의 통화 가치도 폭락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둘러싼 충격이 신흥국들의 경제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8일(현지 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달러 대비 러시아 루블화 값은 전날보다 7.22% 떨어져 러시아 경제가 심각한 위기를 겪던 2016년 2월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중남미에선 최근 브라질 헤알화와 멕시코 페소화 값이 역사상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WSJ는 국제금융연구소(IIF)의 분석을 인용해 “1월 20일 이후 8주간 코로나19가 세계로 확산되는 사이 550억 달러(약 70조 원) 규모의 자금이 신흥국 주식과 채권시장에서 빠져나갔다”고 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비슷한 기간 동안 신흥국시장에서 이탈한 자금(250억 달러)보다 두 배 이상 큰 규모다. 블룸버그뉴스는 “제왕적 달러(King Dollar)가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국제경제에 새로운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며 “특히 신흥시장이 폭락한 화폐 가치와 줄어든 내수로 대응에 애를 먹고 있다”고 전했다.

○ “현금보다 숨기 좋은 곳은 없다”

과거 ‘골드러시’에 빗댄 ‘달러러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코로나19 사태 자체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선진국 내 코로나19 확산 추세가 진정되지 않으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도 심각한 수준의 ‘디플레이션 리스크’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주가 하락기에 도피처로 삼았던 정부 채권과 금, 은마저 매각하고 현금, 특히 미국 달러를 끌어 모으는 모습이다. 실제로 안전 자산 선호와 미국 경기부양책에 따른 국채 발행 증가 우려로 이날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전날 0.994%에서 1.259% 상승하고 가격은 급락했다. 금과 은값도 각각 3.1%, 5.9% 떨어졌다. 미국 달러화 대비 영국 파운드화 가치도 1파운드당 1.1784달러로 1985년 이후 최저치로 하락했다.

블리클리어드바이저리그룹의 피터 부크바 최고투자책임자(CIO)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국채를 피한다는 것은 어떤 것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며 “현금보다 더 숨기 좋은 곳은 없다”고 말했다. 스웨덴 금융그룹 SEB의 유지니아 빅토리노 아시아부문장은 “(안전 자산 투매는) 모든 (경제적) 상관관계가 무너진 것”이라며 “이는 위기 때 나타나는 일이다. 지금은 미국 달러가 왕”이라고 했다.

한국 금융시장에서도 채권금리가 상승(가격은 하락)하고 금값이 떨어졌다.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0.143% 상승한 연 1.193%에 마감됐다. 지난주까지 고공행진을 펼쳤던 금 가격도 코로나19가 유럽을 강타한 이후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날 KRX금시장에서 1kg짜리 금 현물 1g당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0.40% 오른 6만720원에 거래를 마쳤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팬데믹(대유행)으로 인한 향후 경기침체 폭을 가늠하기 어렵다 보니 위험자산 안전자산 여부에 상관없이 매도를 통한 현금화 수요만 강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 세종=남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