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100년을 준비합니다 / 내 삶 속 동아일보] <6> 부정선거 첫 폭로 故박재표씨
대한민국 첫 부정선거 제보자인 고 박재표 씨의 부인 김선월 씨가 동아일보 사령장 등 고인의 유품을 보여줬다. 천안=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0일 충남 천안 자택에서 만난 김선월 씨(82)는 3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을 떠올리면 답답할 만큼 고지식했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했다. 크지 않은 키에 조용한 성격. ‘정직’이 좌우명이었던 남편은 1956년 동아일보에 경찰의 표 바꿔치기를 고발했던 대한민국 첫 부정선거 폭로자 박재표 씨(1932∼2017·사진)다. 그의 삶을 1972년 동아방송(DBS)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남긴 육성과 가족 인터뷰 등을 통해 재구성했다.
24세 순경으로 전북 정읍에서 근무하던 박 씨는 1956년 8월 도의원 선거 때 투표함을 개표소로 옮기는 일을 맡았다. 임무 중 동료 경찰이 자유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야당 표를 대거 여당 표로 바꾸는 걸 목격했다. 고민 끝에 사표를 쓰고 서울로 상경해 동아일보를 찾았다.
8월 29일 기사가 실리자 경찰엔 비상이 걸렸다. 근무지 이탈 등을 이유로 체포령을 내리고 현상금 30만 환과 1계급 특진을 내걸었다. 박 씨가 붙잡히자 경찰은 증언을 조작해 1심에서 실형을 받게 했다. 당시 그는 최후 진술에서 “부모와 선배로부터 거짓말을 하라는 말은 못 들었다. 제가 희생되는 건 좋다. 그러나 옳은 것은 옳은 것”이라고 말했다.
2심에서 무죄 판결로 10개월 만에 석방됐지만 내부고발의 대가는 가혹했다. 경찰과 농림부에서 일하던 형제들은 파면됐고 조카들은 학비를 내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 박 씨는 어딜 가나 감시 대상이 됐다.
“1959년 초 결혼했는데 선거 때만 되면 병역법 위반이라며 잡아가 군대 훈련을 시켰다. 두 번이나 사라져서 아들을 친정에 맡기고 경찰서 등을 돌아다녔다.”(부인 김 씨)
잠시 민주당에 몸담았던 박 씨는 4·19혁명 후 경찰에 복직했다가 5·16군사정변으로 다시 민간인이 됐다. 국수가게를 차리는 등 여러 일을 전전하다 의인(義人)의 처지를 안쓰럽게 여긴 동아일보의 제안을 받아들여 경비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1990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자재부 등에서 근무했다.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셨고 휴가 간 동료 대신 근무했다는 얘기를 자랑 삼아 하셨다. 돌아가실 때까지 ‘가장 신뢰하는 신문’이라며 동아일보를 보셨다.”(손녀 박선영 CBS PD)
박 씨는 DBS 다큐멘터리에서 당시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옛날 회고라는 건 없습니다. 미련도 없고 (다만) 앞으로 내가 맡은 일을 충실히 할 작정입니다.”
천안=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